■ 박영문 목사의 지옥 체험기▲ 故박영문 목사는 불신자 때인 1986년 '천국과 지옥'을 체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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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영문 목사는 불신자 때인 1986년 ‘천국과 지옥'을 체험한 이후, 해마다 3일 휴가 정도만 쉬고 23년간 국내외 교회로 ‘천국 지옥' 증언 집회를 다녔는데 과로한 몸을 이끌고 무리하게 쉬지 않고 사역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간암으로 2009년 6월에 소천하였다. 다음은 故박영문 목사의 생생한 지옥 체험기이다.
1986년 4월 3일은 내 일생을 변화시켰던 일이 있었던 날이다. 1985년 술에 취해 오토바이 사고를 내고 구치소에 갇혔다가 풀려난 내게 아내는 이혼 요구를 했다. 이에 분개한 나는 아내와 이혼을 부추긴 처가댁 식구들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8명에 대한 철저한 살해 계획을 세웠었다.
이를 실행에 옮기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광주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서울로 가는 기차 10시 40분 티겟을 예매해 놓았다. 그때가 86년 4월 3일 밤이었다.
그러나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기 불과 40분전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우렁찬 굉음을 들었다. 귀에 고막이 터질 듯한 아주 크고 우렁찬 음성이었다.
“여봐라! 여봐라!” 너무도 이상하여 대문 밖으로 나가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의아해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와 피우려던 담배를 손에 쥐고 성냥불을 막 그으려는 순간 갑자기 방안이 환해지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엉겁결에 문 쪽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놀라움에 소리치고 말았다. 선명한 일곱 빛깔의 무지갯빛이 내리깔리면서 그 빛 가운데로 위에서 어떤 물체가 내려오는데 자세히 보니 하얀 옷을 입은 한 사람이었다
밝은 빛 때문에 얼굴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분명 우리와 같은 사람의 형상이었다. 이윽고 그 하얀 옷을 입은 사람 뒤로 네모난 모양의 마차가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그 마차에는 의자 셋이 있었는데 가운데는 비어 있고 양쪽에는 하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마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었다면 분명 큰 감동을 느꼈겠지만 나는 그쪽으론 전혀 문외한이었기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불타오르던 증오심이 싹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옆에서 수면을 취하시던 어머니를 황급히 깨웠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이 장면이 보이지 않았고 쓸데없는 소리 말라며 다시 주무셨다. 내가 다시 마차를 쳐다보았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비어있는 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분명 몸을 만져 보며 확인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듯 했다. 그 마차에 앉자마자 마차는 출발했고 나는 그 때부터 천국과 지옥을 생생히 보게 되었다.
<지옥 부분만 서술-편집자주>갑자기 마차는 밤처럼 캄캄한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유일하게 마차를 질주하는 곳만 보름달 크기만한 불빛이 환하게 비칠 뿐이었다.
이내 내 마음 가운데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어느새 사람의 형상을 한 불빛은 한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6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생전에 유교 학자로 향교에서 장의(掌儀)까지 지내며 문중 일도 도맡아 하시던 집안에 대들보와 같은 존재이셨다. 살아 계실 때 예수의 ‘예’자만 들어도 불호령을 치셨던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병환으로 온몸이 퉁퉁 부어 관을 두 개 크기로 짜야할 만큼 비참했는데 이곳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은 돌아가시기 직전 그 비참한 모습 그대로 고통을 당하고 계셨다.
발목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모난 머리를 한 새파란 독사들이 구물 구물거리며 아버지의 온몸을 기어 다니면서 물어뜯고 찢고 할퀴어서 아버지의 신체를 피투성이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울부짖고 통곡하며 아버지를 불렀지만 아버지는 나의 이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셨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둥그스름한 화로 위에 그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큰 석쇠 같은 철판 위에서 훨훨 타오르는 불꽃을 피해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었다. 한마디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익히 아는 또 다른 사람을 보게 되었다.
바로 생전에 돈이면 만사형통이라며 구두쇠같이 살다간 큰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큰아버지도 역시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셨다.
셋째 불빛이 비친 곳에서는 교통사고로 죽은 친구를 보게 되었는데 온몸이 보기에도 흉측한 세 마리의 구렁이에게 감겨 어찌나 세게 조였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 친구 역시 나와 같이 술을 좋아하다 결국 술로 인해 생명을 잃은 사람이었다.
넷째로 불빛이 비추인 곳에서는 깊은 늪, 수렁 속에 허리부분까지 빠져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름 모를 조그맣고 시커먼 짐승들이 앞 뒤 옆에서 치고 뜯고 할퀴고 해서 이들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있었다.
도망가지도 못하고 몸만 좌우로 움직여 짐승을 피하느라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 친척과 그 동향 사람 이렇게 두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사실 그 친척은 교회에 다니기는 했지만 교회가면 병이 낫는다는 말을 듣고 구원의 확신 없이 그저 교회 문턱만 왔다 갔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쪽 다리는 교회 안에 들여놓고 다른 한쪽은 교회 밖 세상에 놓고 건성으로 다닌다면 시간만 축내며 결국 허송세월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본 지옥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곳이었다. 그 어둡고 비참한 곳에서 나는 아버지, 큰아버지, 친구, 친척, 고향 사람들을 분명 보았고 저들을 보며 울부짖을 밖에는 달리 힘이 없었다.
▲ 내가 본 지옥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곳이었다. 그 어둡고 비참한 곳에서 나는 아버지, 큰아버지, 친구, 친척, 고향 사람들을 분명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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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살다가 죽어버리면 그만인 줄 알았던 나는 진실과 맞닿게 된 것이다. 지옥을 본 후 마차가 처음으로 멈춰선 곳은 ‘심판대’라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태어나서 눈․입․손․발 그리고 마음속으로 지은 죄까지 적혀 있는 ‘회고록’이란 것을 보았다.
내가 세상에 살면서 지은 죄의 종류가 무려 1백32개의 종류나 되었고 각각의 종류별로 세분화되어 그 가짓수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그중 술 먹고 실수한 죄목 밑에 가장 많은 가짓수가 뻗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세상살이에서는 죄가 되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죄가 되는 항목 두 가지를 보게 되었다. 하나는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이요, 둘째는 예수 믿는 사람을 욕하고 멸시, 괄시하며 핍박한 것이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것이었다.
교회에 다니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성경, 찬송가를 찢고 불에 처넣어 태워버린 일, 전도하는 친구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멸시하고 심지어 발길질에 뺨까지 때렸던 지난날의 죄가 시간과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록돼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내내 궁금히 여기던 질문을 했다. “왜 예수 믿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형님 같은 사람에게 이런 곳을 보여주지 예수라면 징그럽게 싫어하고 세상에서 온갖 죄를 저지른 죄인인 내게 왜 이런 곳을 보여 주냐”고 말이다.
이에 이런 답변이 명료하게 들려왔다. “너희 형님 같은 사람은 이런 곳에 올 필요가 없다. 너와 같은 사람이 네 눈으로 직접 보아야지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고 세상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윽고 마차는 다시 출발했고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믿겠느냐?” 하는 크고 우렁찬 음성이 다시 내 귓전에 들려왔다. 이 음성은 내가 일가족 여덟명을 죽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기 40분전 방안에서 들었던 바로 그 음성이었다.
당시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보지 않았으면서도 “주여! 믿습니다!”라는 대답이 절로 나왔고 주님을 영접했다.
그러자 뒤이어 말씀하시기를 “이제 세상에 나가면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도 보태지 말고 빼지도 말고 네가 본 그대로 증언해라”라고 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헤어지면서 들려주신 음성은 “두고 보리라!”였다.
이렇게 몇 날 며칠 동안 긴 여행을 한 것 같았는데 깜짝 놀라서 벌벌 떨며 깨어보니 밤 11시 10분이었다. 불과 70여분 사이에 이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는 숫자의 개념도 시간의 개념도 없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머니가 방 한구석에서 벌벌 떨며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계셨다. 어머니 말을 빌자면 내가 한 시간이 넘도록 세상에서는 무슨 말인지 모를 말들을 혼자 중얼 중얼거리는데 아무리 흔들어도 모르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내가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어머니께 상세히 말씀드렸다. 예수의 ‘예’자만 들어도 아버지처럼 불호령을 치셨던 어머니께서는 당신 남편의 비참한 얘기를 들으시곤 눈시울을 적시셨다.
이제 어머니와 난 예수 동창생이 되어 매일매일 얼마나 열심히 교회에 다니시며 전도하시는지 나 못지않은 열정을 가지신 분이 되셨다.
<곡성 다니엘금식수양관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