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하라법 ‘조속한 여야 합의를’
양육의 의무를 방기한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이른바 ‘구하라법(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여론이 거듭 드세지고 있다. ‘구하라법’은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가 자식이 사망했을 때에 그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자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하라법은 20대와 21대에 들어서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이 제정되면 자녀가 어릴 때 버리고 도망갔다가 그 자녀가 사망하자 갑자기 나타나 재산과 보험금, 합의금 등을 모두 가져가 버리는 인면수심의 비인륜적 행위들이 감소할 것이라는 게 피해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구하라법!’ 국회 입법에 이르는 사연은 이러하다. 2020년 4월 3일, 구하라 오빠의 변호인은 구하라법 제정을 위해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10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해당 청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법제사법위원회는 ‘계속심사’ 결정을 내렸다. 그러다 2020년 5월 20일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2019년 가수 구하라씨의 사망 후, 구씨의 생모는 20여 년간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갑자기 나타나 유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이에 구씨의 오빠가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12월 21일, 광주가정법원은 양육한 아버지의 기여분을 인정해 상속금액을 구 씨 부친에게 60%, 갑자기 나타난 친모에게 40%의 상속권을 인정했다.
이렇듯, 구하라법의 국회 국민동의청원 전후에는 각종 사연들이 서글프게 전해온다.
▼ 김종안씨는 지난 2021년 1월 23일 대양호 127호 선박에 승선해 있던 도중 폭풍우를 만나 5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이후 그의 앞으로 사망 보험금과 선박회사 합의금 등 총 3억 원가량의 보상금이 나오게 됐다.
이 소식을 접하고 54년 만에 나타난 80대 생모는 민법의 상속 규정에 따라 모든 보상금을 가져가겠다며 유족들과 소송을 벌였다. 2022년 12월 유족을 상대로 진행된 부산지방법원의 1심에서 생모는 승소하였지만, 최근 보험금을 나누라는 법원의 중재안마저 거절해 공분이 일고 있다. 누나 김종선씨는 “김종안씨가 2살이 되던 무렵 자식을 버리고 재혼한 후 한 번도 3남매를 찾아오지 않았던 생모를 어머니라고 할 수 있냐”라고 분노를 감추질 않았다.
▼ 20대 딸이 암으로 숨지자 28년 만에 나타나 억대 보험금과 전세 보증금을 받아 간 생모 이야기가 2020년 10월 26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생모는 유족이 병원비와 장례비용을 고인의 카드로 결제했다며 소송을 건 사실이 알려지며 공분을 샀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암 판정을 받은 뒤 “재산이 친모에게 상속될까 봐 걱정된다. 보험금·퇴직금은 지금 가족들에게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주변인들에게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공증 받은 유언이 아니어서 효력이 없고, 법정 상속인이 아닌 고인의 새어머니는 기여분이나 상속재산분할 소송도 걸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천안함 피격 사고로 숨진 고(故) 신선준 상사의 아버지 신국현씨의 경우이다. 신 씨는 천안함 사고가 있은 지 100여일쯤 지난 2010년 7월 초 수원지방법원을 통해 신 상사의 친모를 상대로 상속 제한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의 조정으로 합의했다.
신 씨가 소송을 제기한 것은 아들이 2살 때 집을 나간 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던 친모가 28년이 지난 뒤에야 친권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숨진 아들이 남긴 재산과 보상금, 보험금, 성금 등의 액수가 적지 않았던 탓이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로 애지중지 키운 딸을 하루아침에 잃은 A씨. 2014년 4월 22일 딸의 발인을 마치고 슬픔에 빠져있던 중,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12년 전 이혼한 전남편 B씨가 일절 연락도 없이 딸의 사망보험금 5000만원의 절반인 2500만원을 수령했다.
● 정교한 입법 ‘진통 겪어’
21대 국회를 맞아 2020년 6월 3일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민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구하라법’을 대표 발의하였다. 또한 2021년 6월 15일, 정부의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며, 이틀 후 국회에 제출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민법 1004조에 따르면, 자식이 사망하면 제1 상속권자는 친부모가 된다. 현행법은 살해, 유언 또는 유언 철회 방해, 유언서 위조 및 변조 등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 한해 상속권을 박탈하는 ‘상속결격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부양 의무 태만과 관련된 조항은 없다. 법조계는 민법상의 결격사유 규정이 형평성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면서도, ‘부양의무의 현저한 해태’(懈怠, 게을리 함)는 개념이 모호해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덧붙이면, 피상속인이 부모를 용서했는데도 부모 이외의 다른 친족에게 상속이 이뤄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고, 부모의 상속결격 사유가 사후에 확인될 경우 상속재산을 취득한 제 3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 법안심사 회의에서는 2017년 헌법재판소 판결이 거론되기도 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상속권과 관련해 “부양의무 이행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이를 상속결격 사유로 규정하게 되면,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하게 돼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저해된다”고 결론 내린바 있다.
이른바 ‘구하라법’의 문제점을 보완한 새로운 민법 개정안은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직계존속의 직계비속에 대한 부양의무 중대 위반(미성년 한정), 범죄행위, 학대 등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로 한정했다.
특히 개정안 1004조의2 제1항의 사유 중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를 상속결격사유에 편입시키고, 피상속인에 대한 유기·학대·범죄 행위, 기타 사유에 대해서는 유류분(상속받은 사람이 다른 일정한 상속인을 위하여 반드시 남기어 두어야 할 일정 부분) 상실제도로 입법화는 제반 이해 당사자와 충돌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피상속인의 복지를 현저히 해치는 등 양육의무를 중대하고 위반한 경우에는 양육을 포기한 부모의 상속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데 초점 맞춘다.
“민법에 부모는 미성년 자녀를 부양·양육해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자녀 양육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 사망으로 인한 재산적 이득을 얻는 것은 보편적 정의와 인륜에 반한다” 대명제는 우선 ‘공무원 구하라법’이라 불리는 ‘공무원재해보상법’과 ‘공무원연금법’ 통과되어 시행 중이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재해유족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공무원이 사망한 경우, 양육책임이 있는 부모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심의를 거쳐 부모에게 급여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
‘인사혁신처’는 2021년 8월 27일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에서 공무상 순직이 인정된 고 강한얼 소방관의 아버지가 낸 ‘양육책임 불이행 순직유족급여 제한청구’를 받아들여 아버지의 재해유족연금을 당초 50%에서 85%로 늘리고 어머니의 연금지급 비율을 50%에서 15%로 감경했다. 이번 결정은 양육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유족급여 지급을 제한할 수 있게 한 공무원재해보상법 개정에 따른 첫 조치다.
65년 만에 민법 전면 개정이 추진되지만, 그동안 시도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법무부는 1999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민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결국 국회의 회기 종료로 개정안이 폐기됐다. 국회의원, 특히 법사위의 법률가 출신 국회의원이나 전문위원 등을 설득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 납득할 수 있는 개정안 자체를 마련하는 것이 민법 개정 현실화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는 낳아준 것만으로도 상속인 자격이 있을까?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평생을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고통 받았던 자녀의 유산이 돌아가는 것은 누가 들어도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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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