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 사무총장 ‘끓는 지구’ 서막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는 7월 들어 15일까지 온도가 1940년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면서 역대 가장 더운 7월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평가를 근간으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7월 27일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에 이어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시작됐다”며 비장하게 정식 기후재앙 서곡을 선포하기 이른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이날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럽과 아메리카 등 북반구 전역을 덮친 폭염과 이로 인한 산불을 언급하며 ‘잔인한 여름’이라고 묘사했다.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고, 최악의 상황을 회피할 여지는 있다”며 회원국의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했다.
우리 한국도 이런 기후재앙의 중심에서 비켜갈 수 없었다. 80년 만의 기록적 폭우에 대한민국 곳곳이 물에 잠겼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현재(지난 19일 기준) 사망자는 경북 24명, 충북 17명, 충남 4명, 세종 1명 등 총 46명이다. 특히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만 13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한편, 사유시설 피해는 충북과 경북을 중심으로 1천47건 발생했다. 공공시설은 충남 463건, 충북 244건, 경북 228건 등 총 1천101건 발생했다.
특히 24명의 사상자를 낸 오송읍 지하차도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제가 사고 현장에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김영환 충북지사의 발언이 알려지자 유족들은 반발했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무책임한 발언 때문에 유가족은 더 큰 상처를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듯, 국내 폭우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순방 일정을 연장해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한 것을 두고, “지금 당장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 간다고 해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다”고 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발언에 수해 지역 피해민들의 눈길이 곱지 않다.
아울러 지난 18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권·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복구와 피해보전에 재정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힌 대목 역시 국민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경고등 없는 급박한 폭우피해는 올해 초유의 일이 아니다. 작년 8월 초 수도권에는 시간당 100㎜ 이상 퍼붓는 기록적인 집중 호우로 전국 곳곳의 저지대, 지하 주택 및 주차장 등이 물에 잠겼다. 특히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일가족 3명이 집 안에 고립돼 사망했고, 이어 9월에는 태풍 힌남노 영향을 받은 경북 포항시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8명이 사망했다. 하천에서 범람한 물이 사고가 발생한 지하주차장을 덮친 것이다.
이제는 갈수록 심각성을 더해가는 고수위급의 기상 대재앙을 어쩔 수 없는 천재(天災)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예견되는 피해를 최소한 시키는 ‘적극적·선제적 대응’의 과감한 발상 대전환 정책 수립이 시급하게 요망된다.
● ‘하천정비 예산’ 대폭 늘려야
정부는 수해예산을 전향적으로 늘리고 100% 정부 재정으로 관리하는 국가 관리 대상인 ‘국가하천’의 문턱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 지난 30년간 국가하천으로 승격된 지방하천은 약 30개에 불과하다. 모든 지방하천을 국가하천으로 승격시킬 수는 없지만 위험하거나 시급하고 가치가 있는 하천에 대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또한 지천과 지류 정비 예산을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 2020년 지방분권 확대 차원에서 하천 관리 주체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로 나누면서 3700여개 지류·지천의 ‘관리‧보수‧정비’가 일체 지자체 소관으로 이관되었는데, 예산 부족으로 지류·지천 정비가 후순위로 밀렸다.
매년 반복되는 수해의 주범이 지자체 예산 부족 등으로 방치된 지류·지천 관리에 있다는 진단에 따라 국가 주도의 정비사업을 위한 근거법 등 제도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낙동강, 금강, 영산·섬진강 등 3대강 수계 물관리 및 주민지원사업 등에 관한 법률 등 홍수대응 법안을 포함한 15개 환경법안이 지난 7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먼저 하천법 개정을 통해 국가하천의 ‘배수영향구간’에 있는 지방하천을 국가가 직접 정비할 수 있고 그 비용을 부담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배수영향구간은 국가하천의 수위 상승으로 배수영양을 받는 지방하천 내 구간을 말한다. 그동안 집중호우로 지방하천에 피해가 발생했지만 중앙정부가 직접적으로 지방하천을 지원할 수 없었다. 이번 개정으로 정부는 하천공사 시행과 비용부담도 가능하게 된다.
또 3대강 수계 물관리 및 주민지원사업 등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수계기금의 용도가 확대됐다. 이를 통해 가뭄이나 홍수 등 물 재해 대응이나 유충발생, 적수현상 등 수돗물 오염사고 대응 등 기후변화에 따른 물관리 여건에 맞게 수계기금을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 침수 우려 지역 건축물에 건축법 및 주차장법 개정안도 빨리 손보아야 한다, 지하 주차장 등에 침수방지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지하층을 주거용으로 쓰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 행정안전부와 지자체가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소하천 정보체계를 연계 구축해 운영하도록 하는 소하천정비법 개정안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 수해 복구와 관련해서는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 역시 조속히 입법화되어야 한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의 긴급재해복구사업에 대해선 환경영향평가 대상에서 제외해 행정절차를 간소화하자는 내용이다.
● 효과적 인프라 조기구축 ‘사전대비’
중앙·지방정부와 정치권은 예고된 천재지변으로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의 막대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투입해야 한다. 국가는 온실가스 감축은 물론이고, 에너지와 교통, 환경 등에서 새로운 기후 관련 기술과 정책을 접목하고, 산업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기상재앙은 인류의 건강과 식량안보, 물관리 등 제반 환경에 광범위한 영향을 급속도로 미칠 것이다. 홍수, 가뭄, 폭염 등 다양한 기상이변에 따라 원자재 생산 전반에 영향을 줄 것이며, 근로자의 안전 경제활동에도 엄청난 피해를 수반하게 된다.
우선적 단기 처방으로 올 여름 이미 현실화된 심각한 폭염과 기록적인 폭우에 따른 각종 피해 복구를 긴박하게 서둘려야 한다. 이와 함께 방재 시스템을 강화하고,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 등 보완책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또한 국민 각자는 안전의식을 고취한 가운데 빈틈없는 대비를 해야 한다.
특히 국가 통수권자부터 매년 반복되는 재해와 재난에 대한 확고한 예방 의지로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시 해야 한다. 정부나 지방정부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주도면밀한 예측으로 인적·물적 피해 예방을 위한 중·장기적 예산 확보 등 철두철미 효과적 사전 대비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기후 위기가 기후 재앙으로 급발진 되지 않도록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일에 결코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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