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를 위한’ 종점 변경인가?
지난 7월 6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이 불거진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에 대해 “도로 개설 추진 자체를 이 시점에서 전면 중단하고 백지화 하겠다”며, 초강수를 두었다. 원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실무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 “저는 장관직을 걸 뿐만 아니라 정치 생명을 걸겠다. 대신 고발 수사 결과 민주당이 제기한 의혹들이 근거 없고 무고임이 밝혀지면 민주당은 간판을 내려라”고 되레 압박 배수진을 치기에 이른다.
그러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서울·양평 4차선 고속도로 사업 전면 백지화 발표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거센 후폭풍을 야기하자, 바로 다음날인 7일 국민의힘 지도부는 더불어민주당의 ‘선(先) 사과, 후(後) 재추진’ 입장을 밝히며 한발 물러섰다.
지역 숙원사업이었던 고속도로 사업 중단으로 경기 동남부 민심이 이반될 것을 우려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일단 민주당의 사과를 전제로 논란 수습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민주당이 사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 2017년부터 추진 ‘양평군 양서면 종점’
서울~양평 고속도로는 현재 6번 국도의 극심한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경기 하남시 감일동과 양평군 양서면을 잇는 도로로 국토교통부에서 2017년부터 추진됐다. 2021년 4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지난해인 2022면 3월 진행된 타당성조사와 동년 6월의 ‘전략환경영향평가’ 용역 공고에도 종점은 일관되게 양서면이었다.
주말이면 몰리는 관광객들로 꽉 막히는 양평 두물머리 인근인 양서면에 종점이 신설되면, 주민들이 겪는 교통난도 분명 해소된다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국토부가 지난 5월 8일 공개한 ‘전략환경영향평가 항목 등의 결정내용’에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이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변경됐다는 내용이 담기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게다가 “주민 의견이 있을 경우 공개 기간 내에 의견을 제출해 달라”며 5월 8일부터 22일까지 단 15일간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와 환경영향평가 정보지원시스템에만 공개해 정작 양평군 군민들은 이 변경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양평군청 공무원들과 양평군의회 의원들도 이 사실을 대부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종점이 바뀌면 도로 길이가 당초 26.8㎞에서 29.0㎞로 2.2㎞나 늘어나며 공사비도 1조 7695억에서 1조 8661억 원으로 966억 증가하게 된다. 경제성이 1000억 원 가까이 차이가 나는 데도 비공개로 전격 진행된 것이다.
가관인 것은 문제는 공사비 증액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가 예비타당성조사까지 끝낸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을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그 가족이 보유한 땅이 있는 곳으로 종점을 변경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그곳에 29필지, 3만9394㎡(1만1917평)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강상면 땅은 정부가 추진했던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과 약 500m 거리에 있다. 나머지 9개 필지 역시 강상면에서 직선으로 3~4㎞ 정도 떨어져 있으며, 차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임야를 도로로 바꾸는 등 토지 형태를 바꾸는 형질 변경은 모두 11차례 이뤄졌다.
이들 땅은 모두 김 여사 본인과 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씨 그리고 형제 3명이 단독 혹은 공동으로 소유했다. 김 여사 가족이 운영하는 부동산 개발회사 ‘이에스아이엔디(ESI&D)’도 양평 일대에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존중해야’
2021년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양평 지역위원회는 그해 4월 6일부터 28일까지 3주간 12개 읍·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주민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 당시 지역위가 작성한 ‘읍·면 간담회’ 자료를 보면, 최근 종점이 변경된 양평군 강상면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고속도로가 생기는 것만 좋아했지, 종점을 바꿔달라고 주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당시 강하면에서는 양평고속도로 강하면 구간에 나들목(IC) 설치 요청이 있었다. 다만 이는 종점 변경과는 무관한 사안으로, 나들목 설치가 필요하다는 지역 여론이 있다는 사실은 양평군도 인지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규정에 대해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타’는 대규모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 기획재정부에서 사업의 타당성을 객관적, 중립적 기준에 따라 사전에 검증하는 제도다. 예산 낭비와 사업 부실화를 방지하고 재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999년 도입됐다. 주관부처가 아닌 기획재정부가 ‘객관적인 기준’으로 ‘공정’하게 조사한다.
따라서 예타는 대규모 재정사업의 신규투자를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하도록 하는 목적이 크다. 사업의 향후 추진여부, 적정 사업시기, 사업규모 등에 대한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각 부처가 수립한 사업계획의 타당성 및 대안, 사업추진과정에서 고려할 점 등을 검토한다. 사업의 경제성, 정책성(사업추진 여건, 정책효과 등), 기술성, 지역균형발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평가하고 있다.
이번처럼 고속도로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 통과 후 종점을 변경한 것은 목포-광양(순천) 고속도로와 함양-울산 고속도로 2건뿐인데, 둘 다 이미 20년 이상 지난 사례이다.
이전, 전임 정동균 양평군수는 2021년 5월 12일 한정애 환경부장관을 만나 양서면 양수리 일원의 지역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환경부와 환경유역환경청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었다.
당시 정동균 양평군수는 “1972년 수도권 개발제한구역 지정, 1975년도 팔당댐 상수의 수질보전을 위한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각종 중첩규제로 개발이 제한되어 있는 양서면 일원의 지역현안을 설명하며, 환경부에서 우려하는 환경적 훼손을 최소화하도록 합리적인 해소 방안을 마련해 지역주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해소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바란다”고 언급했었다.
양평군은 지난 2008년부터 이 도로를 민자 사업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10년 가까이 사업이 멈춰 섰다. 이후 국토부는 2017년 발표한 제1차 고속도로 건설계획(2016~2020년 추진)에 이 도로를 반영했다. 2021년 4월 이 도로는 경제성, 정책성 등 종합평가(AHP) 결과 0.508을 받아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고, 그곳 주민들은 대대적으로 이를 환영했다.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됐던 지역의 숙원사업이 장관의 일방적 결정만으로 끝나선 안 된다. ‘이권 카르텔’의 온상이라고 규정하고 이번 사건의 진상을 파헤칠 야권 더불어민주당의 ‘고속도로 게이트 태스크포스(TF)’ 활동이 흐지부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분명 사익을 지향하는 정쟁과는 다른 공익적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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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