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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2.12.05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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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국립 한밭대 강희정교수 ‘블루오션 북한미술 재조명’
 
강희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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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미술 접하게 된 계기! 인민대 박사학위 과정

1996년 정부 유관기관 심사통과 한국서 첫 전시회

 

북 대표 창작기관! ‘만수대창작사그룹회장 직교류

최고 수준급의 인민예술가공훈예술가 명작 컬렉션

 

사회주의 사실화, ‘주관적 묘사 강조하는 리얼리즘

북한미술, 영국 중국 등 해외서 국제적 주목 끌어

 

2005년 만수대창작사 방문을 위해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한 필자   

 

북한 미술과 함께한 삶의 여정

 

처음 북한미술을 접한 것은 1994년 베이징에 도착하여 1995년 중국인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면서 계기가 되었다. 당시 베이징에서 특수한 경로로 유통되던 북한미술을 접하게 되었고, 중국에서 무역회사를 창업한 필자로서는 학업에 집중하면서도 비즈니스 업무를 수행하기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북한미술을 공부하고, 필요한 허가를 받아 2,000여점 가까운 작품들을 한국에 반입(민족 간 거래는 수입이 아닌 반입이라함) 하고 수많은 전시회를 열고, 30년 가까이 접하다 보니, 사업 아이템보다는 수집가, 소장자로서 내 삶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제는 북한미술 작품의 진위 판정과 가격 감정 등도 의뢰받고 있다.

 

북한을 상대로 대북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북한주민 접촉승인, 북한물자 반입승인, 북한지역 방문허가 등 통일부 허가가 필요하다. 특히 북한미술 반입을 위해서는 도안심사’(작품사진, 작품장르, 작품명, 작가명, 가로·세로 규격이 표시된 도록 제출)가 필요하다.

 

미술품이나 우표 등은 반입대상 품목의 사진을 최소한 4장을 찍어 내용에 이적 표현이 없는지, 적절한 내용인지를 심사하는데, 통일부, 국가정보원, 기획재정부, 문화체육부 등에서 심사하여 반입불가 품목을 제외하고 반입하여 세관에 신고를 하여야 한다.

 

통일부의 허가를 받은 후, 평양에서 고려항공으로 베이징에 들어온 만수대창작사 해외개발그룹 회장과 북한 유명 화가들을 베이징의 북한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접촉하면서 꽤 많은 작품들을 수집하였고, 19969월 한국에서 첫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9월초 서울역 전시관에서 개최할 당시에는 언론 및 미술 매니아들을 비롯하여 일반인들의 큰 관심을 받았는데, 9월말부터 강원도에서 북한잠수함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해 12월까지 대전 EXPO 전시관에서 개최하던 전시회가 큰 영향을 받으면서 첫 전시회는 나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잠시 사업을 멈추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그 후에도 북한미술 사업은 지속되었고, ‘햇빛정책시기에 대북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약 한 달간의 현대백화점 전국 순회 전시를 마칠 수 있었다. 정주영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북한의 고향을 방문하던 시기였고, 정부의 정책적 방향과 대북사업 활성화가 시너지를 창출했던 남북경협의 골든타임이었다고 생각된다. 대전 전시회에서는 국무회의를 마치고 직접 헬기를 타고 왔던 당시 김종필 총리에게 전시된 작품들에 대하여 소상하게 설명드렸던 기억이 난다.

 

19981118일 남북민간교류 10주년 기념일을 계기로 현대 금강선유람선이 출항하면서 대북사업은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당시 필자는 한민족물자교류협회라는 대북사업가협회의 사무총장으로서, 현대유람선 내의 북한상품판매센터를 우리 협회가 주관하였고, 30개 가까운 대북사업가들이 다양한 아이템을 가지고 참여하였다.

 

2000년대 초반 현대가 유람선 사업을 중단하면서 대북사업은 다시 위축되었고, 필자 또한 강남고속터미널에서 5년여 운영했던 북한상품 상설전시장인 남북한평화물산관의 문을 닫고, 고향인 대전의 한 대학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대북사업은 내셔널 비즈니스라는 원초적 성격으로 인하여 경제적 논리보다는 남북관계에 따라 기복이 심하다. 지금은 인터넷 공간을 활용한 사이버 북한미술박물관플랫폼을 준비하면서 1~2년에 한 번씩 미술전시회를 하고 있지만, UN의 대북 제재가 해제되고, 남북관계의 복원을 통하여 이전과 같이 남북경협이 활성화되어 지속가능한 경제협력 기반이 구축되기를 기대해 본다.

 

▲  현대유람선 출항과 함께 오픈한 남북한평화물산관 개관식

 

북한미술 장르및 작가의 등급!

 

북한미술의 대표적인 장르는 사실주의 기법으로 화선지에 붓으로 채색한 조선화이다. 이밖에도 유화, 수예, 판화, 도자기 및 공예, 그리고 천연 돌가루로 제작한 보석화, 조개껍질로 제작한 만년화 등이 있다. 또한 외화벌이 수단으로 아프리카 등 해외에 수출한 거대한 동상 등 조각 작품, 벽화 등의 형태도 모두 북한미술의 장르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창작기관으로 대표적인 것은 만수대창작사이며, 제품의 해외전시 및 수출은 만수대 해외개발회사그룹이 총괄한다. 그 밖에 조선민예총회사, 옥류민예창작사, 백호창작사 등이 있으며, 각 도와 시, 그리고 국영기관 등에서 창작사를 운영하고 있다.

 

화가들의 수준은 국가에서 평가하여 지정하고 있으며, 최고등급인 김일성 계관인상 수상작가는 실력과 기여도 등으로 평가되고, 순수한 작품성으로서의 최고등급으로는 인민예술가와 공훈예술가 등급이며, 기타 만수대 1, 2, 3급 창작가 등 급수로 칭호를 부여하고 있다. 이밖에도 각 지자체 및 기관 소속의 작가들이 각각의 장르별로 수준에 따른 칭호를 가지고 있다.

 

대략 인민예술가는 우리나라 국전 심사위원급, 공훈예술가는 우리나라 국전 초대작가급 수준의 작가들로서 북한에서는 최고 수준의 등급에 속한다.

 

주요 인민예술가에는 강훈영, 구본영, 김경환, 김상목, 김상욱, 김성근, 김성민, 김승희, 김주경, 김창길, 김춘전, 리경남, 리근화, 리길남, 리상문, 리석호, 리율선, 리창, 리춘식, 문학수, 문화춘, 명시환, 박래천, 박진수, 박창섭, 박효성, 백학훈, 선우담, 선우영, 송시엽, 정관철, 정온녀, 정창모, 차형삼, 최계근, 최성룡, 최창호, 함창연, 홍승철 등이 있다.

고려청자를 재현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우치선과 임사준은 도자기 분야의 인민예술가이고, 수예부문에는 인민예술가 리원인, 공훈예술가 김청희 등이 있으며, 보석화와 만년화는 특성상 여러 명이 팀을 이루어 함께 작업하는 집체창작의 경우가 많다.

 

주요 공훈예술가에는 강신범, 김고록, 김국렬, 김명원, 김상숙, 김순투, 김승진, 김영식, 김영진, 김영철, 김정혁, 김진혁, 김혁철, 김훈, 류성근, 류입숙, 리성욱, 리철, 리철민, 리화식, 림단풍, 림파, 박경철, 박동걸, 박창룡, 박충성, 방성희, 방학수, 송윤풍, 엄정민, 오영성, 유정봉, 장명남, 장성일, 장원길, 전영, 전정민, 정동혁, 최광수, 최일봉, 최제남, 탁효연, 한경보, 허재성, 홍유성, 홍천성, 홍철웅, 황철 등이 있다.

 

▲  조선미술가동맹 김주경 위원장(월북화가), 유화 묘향산

 

폐쇄사회에서 꽃피운 예술혼

 

위에서 언급한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들은 모두 북한의 정상급 작가들로 체제적 한계와 폐쇄사회 속에서 나름대로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들이라 할 수 있으며, 작가들 마다 고유의 성장 배경과 애절한 성공 스토리를 품고 있다.

 

김주경(1902~1981)은 일제강점기 한국화단을 이끈 제1세대 서양화가이다. 충북 진천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김주경은 일찍이 비범한 재능을 인정받았고, 동경미술대를 졸업하였다.

 

특히 1938년 오지호와 함께 발간한 2인 화집은 우리나라 최초의 컬러화집으로 그 사료적 가치가 크다. 광복 직후 조직된 조선미술건설본부의 서양화 부위원장,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 평양미술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다. 평양미술학교가 대학으로 승격되면서 1958년까지 초대학장을 지냈다. 김주경의 화풍은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신선하고 밝은 색채, 빛의 미학에 심취한 화풍을 추구하였으며, ‘묘향산’(1959)이 그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선우영은 북한을 대표하는 작가로 조선범이 그의 대표작으로 우리나라 전통 호랑이의 위엄 있는 자세를 바탕으로 뒷배경으로 춘동의 4계절을 표현하였다. 겨울 배경을 표현한 조선범()’은 동경 코리아미술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필자는 조선범()’조선범()’ 두 개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고, ‘조선범()’10여년 전에 매각하고 조선범()’20여 년간 소장하고 있는데, ‘조선범()’은 사진으로만 보고 실물로는 접하지 못하였다. 선우영은 북한미술 해외전시에도 많이 참가하였고, 주로 활동하였던 중국, 영국 등 해외에서 평가가 높으며, 2010년 작고한 이후 그의 작품가격은 폭등하였고, 구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 되었다.

 

파도화가로 불리는 김성근은 조선의 기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세계 정상급 인사들이 평양을 방문하면 최고위급 사진 배경으로 거대한 김성근의 파도 작품이 활용된다. 평양보다는 동해안에 움막을 짓고 머무르면서 파도를 연구하고 그린 작가로 유명하며,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12차 국제 수채화 전람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이밖에도 북한 최고의 인물화가 김성민, 북한 최고의 정물화가 오영성, 설산계곡의 세심한 터치가 명품인 김춘전, 선이 굵은 화풍의 리쾌대 등 북한을 대표하는 수많은 작가의 다양한 스토리들은 모두 감명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의 유화 등 현대미술 작품들이 갑자기 몇 백억 대로 거래되는 등 중국 생존 작가의 작품들이 국제적 조명을 받고, 고평가되는 현상들을 보면서 북한미술 또한 북한의 개방화 및 경제성장 과정 속에서 재평가 되어야 할 영역으로 본다.

 

인민예술가 선우영, 조선화 조선범()  

 

독특한 사회주의적 사실화특성의 북한미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Socialist Realism)1934년 제1회 소비에트 작가협회에서 공식적으로 주장된 창작이론 및 방법으로 사회주의 미술 및 문학에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다. 이는 현실을 역사적 발전 속에서 사실적으로 포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 추상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반적인 미술발전 역사와는 다른 특이점에서 시작되고 있다.

 

북한 미술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출발하였고, “인민의 생활감정과 정서에 맞는 인민미술, 당과 혁명의 리익을 위한 혁명미술을 지향해야하는 고유의 틀을 내재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또한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아야하며, 민족적 전통의 조선화는 이를 대표하는 형식이고, 사회주의적 내용의 핵심은 주체이다.

 

따라서 북한미술은 기본적으로 첫째, 북한의 체제와 사상을 표현하고 선전하는 도구로서의 혁명미술이라는 전투적인 화폭을 보이고 있다. 둘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적 사실화를 통하여 민족정서를 표현하는 인민예술적 특성을 지니면서 우리 고유의 민족적, 전통적 모습과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필자가 북한미술에 주목하는 이유이며, 사상이 최대한 배제된 형태로 작가의 주관적 정서가 표현된 리얼리즘은 존중받아야 한다.

 

기록을 위한 단순한 극사실주의가 아니라 현실에 침투하여 화가가 체득한 삶의 본질을 화폭에 담아야하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단순한 객관적 묘사보다는 주관적 묘사를 강조하는 리얼리즘 미술론이다.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묘사라는 방향성은 체제 및 사상에 대한 비판을 내포할 수 있는 모호한 추상적 묘사가 허용되지 않는 북한의 미술 창작에 있어서 현실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내재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인민예술가 최하택, 유화 황혼의 백두산   

 

분단미술 역사적, 민족적접근해야

 

비록 북한미술이 특정한 사실주의적 화풍 속에서, 자유로운 국제교류를 통한 발전의 제약이 있어 왔지만, 우리로서는 식민지와 분단의 역사를 담고 있는 독특한 영역으로서 민족 미술적 시각으로 대상에 대하여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본래 식민지 시대와 해방기를 맞이하여 우리나라 근대미술은 화가 각자의 고유한 작가 정신으로 대부분 어려운 시기에 힘들게 수학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당시에는 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도 변변치 않았으며, 드물게 유럽 유학이나, 일본 도쿄 등 해외에서 수학하고 활동한 작가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작가가 리쾌대(일본제국미술학교), 리해성 및 정관철(동경미대), 리현순(쿄토 시립미술대), 문학수(일본문화학원), 정종여(오오사카미술학교), 최도렬(동경 가와바다미대), 최재덕(일본 태평양미술학교) 등이며, 리쾌대, 최재덕, 문학수 등은 이중섭과 함께 1941년 일본 도쿄에서 신미술가협회를 창립하여 활동하는 등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국내에서 활동한 정상급 화가들과 유학파들이 해방이후 서울미대를 건립하고, 남북분단 시에는 일부 화가들이 월북하여 북한 쪽 화가들과 평양미대를 비롯한 근대적 미술교육 기관을 설립하였다. 북한의 화가들은 초창기 터전을 만든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두 이러한 북한 쪽 미술교육 기관에서 수학한 화가들이다.

 

체제는 다르지만, 북한이라는 하나의 국가에서 해외에서도 인정할 만한 정상급 화가들을 많이 배출하였고, 이들에 대한 평가는 국제적으로도 인색하지 않다. 나름대로의 작가정신으로 독특한 화풍의 명작들을 남긴 이들의 작품들은 평양미술박물관을 비롯한 북한 각지의 주요 장소에 전시되고 있다.

 

남북분단과 월북작가

 

일반적으로 월북작가라고 하면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사회주의를 선택하여 북한으로 간 작가를 의미한다. 당시에는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사상을 갈구하던 격동기였으며, 사회주의는 하나의 선택 가능한 새로운 대안적 사상이었다. 남북민간 경제교류가 시작(1988.11.18.) 되기 직전, 1988719일 월북작가 해금 조치와 함께, 월북작가를 포함한 북한미술의 주요 작가들에 대한 재조명이 가능한 환경이 되었다.

 

이들이 월북한 시기도 각각 다른데, 좌익에 대한 미군정의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1946년부터 6.25 전쟁 이전에 월북한 작가들 중에는 1946년 민주주의 민족전선 교육문화대책 연구위원으로 활약했던 김주경(1902~1981)을 비롯하여 강호, 조규봉, 리쾌대, 리석호, 김정수, 리여성, 리필찬, 박병수, 윤자선 등이 있다.

 

리석호, 리쾌대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가 리석호는 전쟁 시기에, 리쾌대는 전쟁이 끝나고 다시 월북을 했다. 6.25 전쟁 당시에 월북한 작가들은 리석호, 정종여, 김만형, 엄도만, 림군홍, 황영준, 손영기, 정현웅, 정온녀 등이 있으며, 서울 수복 당시 가족을 두고 넘어간 작가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에 체계적인 미술교육을 받고, 화단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던 작가들로 대부분 북한에서 조선미술동맹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이밖에도 6.25 전쟁이후 월북한 작가들도 있으며, 조선인민의용군으로 참전한 리쾌대와 인민군 종군화가 리건영은 포로수용소에서 북한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길진섭(평양), 김만형(개성), 김경준(함북 명천), 허남흔(평북 창성), 황헌영(평양), 이병효(함북 청진), 리해성(황해도 해주), 문학수(평양), 한상익(함남 함주) 등 출신지가 북쪽인 작가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사례가 있으며, 이들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월북 작가의 범주로 보고 있다.

 

특히 남한이 고향인 작가들이 전쟁 중 또는 전쟁 이후에 월북한 사례들이 많으며, 운보 김기창 화백의 친동생 김기만(서울)을 비롯하여 강신범(서울), 김주경(충북 진천), 리석호(경기 안성), 리원인, 우선일, 윤복선, 최도렬(강원), 리쾌대(경북), 정종여, 최재덕(경남), 정창모(전주) 등이 있다. 또한 일본이나 중국에서 태어나서 월북작가로 활동한 사례로 일본 출생인 김광남, 김승희, 리현순, 중국 출생인 신신민, 최상건, 최영식 등이 있다.

 

프로필

중국인민대학 경영학박사 / 국립 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한중경제통상진흥원 이사장

대통령직속 자문위원회 동북아시대위원회 자문위원 역임 / 중국과학원 중한지속가능발전센터 한국 대표 역임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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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11/22 [13:06]  최종편집: ⓒ 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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