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승과 제자’…보통 인연이 아니라 생각
누구나 마음 안에 존경하는 스승 한두 사람은 있을 것이다. 학교의 스승이든 사회에서 만난 스승이든 스승과 제자라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라 생각한다. 스승은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란 뜻만이 아니라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정신적인 선생님을 가리킨다.
그러나 스승과 제자 사이에 그만큼 격이 없어진 것이 나쁜 것만도 아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육 방식과 사람들 사고도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스승이라고 하기보다 선생님, 혹은 교수님이, 은사님이라는 호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예전의 선생님은 보통 학교에서 배움을 받은 분을 칭하였으나 요즘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너무 난무하고 있어 스승과 선생님이 자연스레 구분되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려면 스승과 제자 사이가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선생님과 스승 사이가 아닌데 사회에서 인연을 맺어 자기보다 윗사람을 부를 때 그냥 쉽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직장 내에서야 무슨 무슨 과장님, 부장님, 차장님 등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외 다양한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처음 만나 애매모호한 경우에 선생님이라고 칭하면 크게 무리하지 않는 호칭이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서 만나는 사람들끼리는 거의 000 선생님이라 한다. 그것도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선생님이라 부르기가 좀 껄끄름하면 00쌤이라 한다. 여튼 선생님이든, 쌤이든 한번은 검토해 볼 문제임은 분명하다.
▲ 예전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고 하였지만, 요즘은 스승의 위상이 많이 낮아졌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은 그저 서당에서나 공부하던 때의 말처럼 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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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과 제자 모습이 많이 달라져
70년대 후반였다. K대학에서 C대학으로 출강 나오시는 교수님 한 분이 계셨다. 대학생들은 당연히 000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은 당신에게 교수라고 부르지 말고, 선생님이라 부르라며 학생들에게 일일이 지적해 주었다. 교수(敎授)는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담당하는 교원, 연구원과 교사가 하는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으로 직업일 뿐이고, 당연히 배움을 받는 학생이니 선생님이라고 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선생(先生)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두루 이르는 말로서 어떤 일에 경험이 많거나 잘 아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일반적인 호칭으로서의 선생님이 그다지 무리는 아닌 듯해 보이지만 마치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이모님’이라고 칭하듯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대명사처럼 사용하는 세상이 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전에는 티브이에서 제자들이 스승을 찾던 프로그램도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까지 이어지는 스승과 제자라면 각별하게 지낸 사이였을 것이다. 아니면 특별한 기억 속에서 은사님을 찾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스승님과 은사님 역시도 비슷한 호칭이지만, 은사님은 좀 더 큰 은혜를 받은 스승을 표현하는 깊이가 다른 느낌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움을 받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에게서 인격적인 존경스러움을 받도록 서로 상호관계가 좋아야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이미 성인이 되어 결혼도 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을 통해서 설핏 들어본 몇 가지 표현을 보면 학교 내에서 스승과 제자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스승을 존경심으로 대해야 하는 근본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꼰대 같은 생각일까?
● 고3 담임이셨던 박갑수 선생님
필자에게는 이제 단 한 분의 스승이 계시고 이미 다른 분들은 고인이 되셨다. 지금도 종종 제자인 나에게 전화를 하여서 “상림이여, 요즘 잘 지내는 거지?, 별일은 없지?” 하면서 궁금해하신다. 고3 담임이셨던 박갑수 선생님은 올해 연세가 85세 고령이시다. 자식들 모두 출가하고 혼자 조그만 아파트에서 사시는데, 아직은 그래도 씩씩하시다.
박갑수 선생님은 40대 초반에 남편을 여의고 4남매를 훌륭히 키워내신 분이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는 기억 속의 선생님은 눈이 충혈되어 빨갛게 자주 핏줄이 터졌던 모습이다. 어린 자식들을 기르면서 학교 근무하고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 당시 그냥 어머니같이 따스하고 푸근한 이미지를 제자들에게 남기신 분이다. 3학년 10반인 우리 반 학생 수는 62명이었다. 여고를 졸업하던 해 남편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그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내 나이 마흔넷에 깨달았다.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날 저녁,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나서 전화를 드렸었다.
“선생님, 제 나이가 지금 마흔넷인데, 어찌 여태껏 홀로 4남매를 기르셨나요?” 하고 여쭤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명절이나 스승의 날에 작은 선물을 보내드리곤 하는데 퇴임 후 몇십 년 후 특히 1977년도 졸업생 제자가 선생님을 기억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고마워하신다.
선생님의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어른스러웠고 성실했던 여고 3학년인 필자의 모습을 들려줄 때도 있다. 당신이 못 이룬 작가의 꿈을 제자가 이루어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자랑스러워해 주시는 든든한 스승이시다.
두 번째 스승은 중년에 문학에서 만난 두 분의 스승이 있다. 한 분은 마경덕 시인님이고 또 한 분은 나정호 작가님이다. 두 분 모두 내게 문학을 알게 해 주고, 문단에 나와 오늘의 나를 길러주신 분이다.
지금도 두 분은 항상 가슴 속 깊이 자리한 문학의 스승으로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다.’라는 다짐으로 스승 앞에서 스스로 나를 낮추게 된다.
아마도 남은 인생에 또 다른 분야에서 어떤 스승을 만나게 될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세 분의 스승처럼 내 마음 깊이 간직할 사람을 만나는 게 그리 쉽지 않을 거다. 그것은 내 삶에 등불을 밝혀 주셨고 언제든 손 내밀면 나를 믿어주고 이끌어주면서 인생 선배로서, 친구처럼 편안하게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스승과 선생의 차이는 무얼까?
‘선생(先生)’은 먼저 태어난 사람으로 먼저 학생이 되어 먼저 배운 사람이다. 반면에 ‘스승’은 선생과 한 차원 다른 약간의 존경심까지 포함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참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의 마음은 어버이시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땐 스승의 날에 꼭 학교 운동장에 전에 학생이 모여서 스승의 노래를 불렀다. 스승의 날에는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드리고 작은 선물도 준비하면서 존경과 은혜로운 마음을 되새겼었다.
그러나 요즘은 촌지 논란과 김영란법으로 금지되어 이런 풍조도 사라지게 된 것이다. 스승의 날 빈손으로 보내면 혹시 우리 아이가 편애를 당할까 싶었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하였었다. 당시만 해도 학부모의 치맛바람이 세서 교사의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풍조가 사라져서 다행이지만 반면에 아이들이 교사를 스승으로 대하는 태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큰아이가 고3이던 15년 전에도 학생들이 담임 선생님을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학교 모습은 잘 모르겠지만 담임 교사가 좀 뚱뚱하고 외모가 맘에 안 든다고 해서 담임을 ‘덩어리’라고 불렀다. 꼰대 같은 소리일지 모르지만, ‘나 때는 말이야, 선생님이 부모님보다 더 어렵고 무서웠어.’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선생님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어려워서 선생님 말씀이 법이라고 여기면서 공부했었다. 그리고 졸업식 날 선생님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 졸업식 노래를 부르면서 울기도 했다.
그렇다면 스승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자. 교사노조는 올해도 스승의 날을 폐지하겠다면서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꾸자고 요구했다. 다시 태어나도 교사 되겠다는 역대 최저 응답으로 학생지도를 기피하고 있는 현상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다시 태어난다면 교직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29.9%만이 긍정적인 응답을 하였다. 교사들의 직무 만족도는 33.6%로 6년 전의 70.2%보다 절반 수준으로 사기가 떨어졌다.
이렇게 스승의 날을 교사의 날로 바꾸자고 하는 이유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교권 보호와 교사들의 사기 문제와 과도한 행정업무, 학부모 민원에 대한 어려움이 원인이다.
교사들이 스승의 날을 반가워하지 않는 이유는 시대적, 사회적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를 한둘만 낳아 기르다 보니 부모의 과잉보호로 인하여 걸핏하면 교사에게 간섭하고 따지고 고발하는 학부모들의 태도도 문제이다.
학교에 맡겼으면 믿음으로 지켜보고 교사의 인권을 침해당하지 않도록 지켜줘야 하는 게 부모의 도리가 아닐까? 교사 역시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며 학생과 학부모와 상호관계가 믿음과 사랑으로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교직을 보는 관점이 다양해졌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교사가 스승이라는 도식에 얽매여 있다. 스승이든 선생이든, 은사이든 호칭의 문제가 아니라 긍정적인 마인드로 서로 믿고 소통하면서 존중하려는 마음가짐이 우선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