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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4.13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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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봉 ‘천년고도 경주를 찾아서’(6)
 
한문학자 유영봉
 

천년의 고독으로 혼자서 외로운 곳

 

▲ 한문학자 유영봉  

길을 나섰다. 봉긋한 가슴을 곳곳에 고분으로 내세우며, 1,200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온 천년고도와 밀어를 나누러갔다. 고맙게도 날씨마저 풀렸으니, 차는 필요 없었다.

 

봉황대를 훑어본 뒤, 앞쪽에 자리 잡은 교리김밥 분점에서 그녀와 김밥을 나누었다. 그리고 황리단길 입구의, 4대째 대를 잇는다는 최영화경주빵집에서 그녀를 위해 빵 한 봉지를 샀다.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향토음식 맛보기 아니던가?

 

대릉원의 담장을 따라 입구 쪽으로 가다가, 어느 한적한 카페의 야외석을 골라 앉았다. 느긋한 아침이 나름 따뜻해진 겨울햇살에 올올이 풀려나갔다. 그녀의 촉촉한 눈망울 덕이었다.

 

첨성대 앞을 맴돌 즈음, 그녀는 다시 그녀의 나날로 되돌아갔다. 나는 그녀의 낭창낭창한 몸매에 홀려 계림으로 들어섰다. 계림비각 뒤쪽의 고목들이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로 오늘의 나그네를 맞았다. 고색이 창연했다.

 

물기가 많은 곳인가? 굵은 둥치의 버드나무들이 삭풍에 잔뜩 웅크렸는데, 홀연 그녀의 맑은 웃음소리가 나목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닭울음소리 또한 아득히 들려왔고, 청설모 한 마리가 지나치는 객을 위해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았다. 그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재성(在城) 또는 반월성(半月城)이라고도 불리는 월성(月城)은 마침 해자를 복원하는 중이라서, 그곳으로 가는 지름길이 막혀있었다. 그래서 큰길가의 신라왕궁영상관으로 들어가 먼저 컴퓨터그래픽으로 재구성한 신라의 거리를 헤맸다. 신라의 거리는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했다.

 

이윽고 월성의 동쪽에서 출발한 발걸음은 다시 최치원(崔致遠) 선생을 찾아 궁궐터를 뒤졌다. 고목들 사이에서도, 석빙고 주변에도, 주춧돌 위에도, 천변에도 선생은 아니 계셨다. 그러다가 문득 북으로 바라보았을 때, 선생은 마침 외직으로 나가기 위해 말을 타고 서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육두품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12살의 어린 나이에 배를 타고 당나라로 건너가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한 선생은 28살에 신라로 돌아와 망국의 전조를 목도하고, 시무책(時務策) 10여 조를 올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골품제도로 경직된 신라왕조는 선생의 충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선생을 태산과 함양 등지의 외직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그 자랑스런 천년 사직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황량한 월성에서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서글픈 마음으로 목을 놓았다. 바람도 놀라 숨을 죽였고, 푸르디푸른 하늘은 한 점의 구름조차 거두었다.

 

허전하고 허전해서 누군가 어깨라도 다독여줄 사람 하나 간절했지만, 끝내 발끝에 매단 그림자뿐이었다. 계림과 월성. 마르께스조차 범접할 수 없는 천년의 고독으로 혼자서 외로운 곳이었다.

 

안압지(雁鴨池)로 불리던 월지(月池)의 야경  

 

길을 건너 동궁(東宮)으로 향했다. ‘안압지(雁鴨池)’로 불리던 월지(月池)가 정중앙의 자리를 차지하고, 동궁을 대표했다. 멋들어진 누각 안에는 그녀가 살던 날들의 편린과 일상용품들이 잔향을 풍기며 펼쳐졌고, 수면에는 두어 쌍의 원앙이 떠있었다. 그 바람에 차마 거둔 눈길이었는데, 멀리 남산 위로 그녀의 얼굴이 살포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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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3/17 [03:29]  최종편집: ⓒ 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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