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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1.20 [01:41]
문화·관광 > 늘 푸른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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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만남 폭풍치듯…열정의 넝쿨”
(POET VIEW) 林 森 당신이 내게
 
림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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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bay.com







 

당신이 내게

 

 

 

 

  

 林  森

 

 

 

열린 창문 틈으로 보이는 바깥엔

초겨울의 햇빛 수정발 친듯 찬란합니다

바람 건듯 불 때마다 거리엔

남아있던 낙엽들 서둘러 스러지고 있습니다

슬금 불어오는 찬바람 끝에

산화한 잎들 마르는 향 실려옵니다

지금 세상은 우물속인 양 고요합니다

겨울 초심 차츰 익어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내게 당신은 유배지에서 만난

마지막 여인이었습니다

당신은 공교롭게도 내가 사랑에 대한

모든 기대의 깃발 소거하고,

냉소와 경멸로 침을 뱉고,

일탈의 세상으로부터 등 돌렸을 때,

그 등 뒤에서 은밀하게 줄 서

기다리고 있던 무엇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이한 만남

폭풍치듯 이루어지고,

두 사람의 존재 속에서 뻗어나온

열정이라는 동물성 넝쿨에

갑자기 뒤엉킨 뒤에도

내게 한동안은 의문과 부정과 망설임과

자기검증 필요한 건 숙명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의 체험 통해 습득한 비교치와

지나간 인연들에 대한 달관의 시야가

갑옷처럼, 투구처럼,

견실한 성벽처럼

무언가를 완벽하게 막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사연이 사랑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사랑을 일종의 의심스러운 적으로 간주한

맹렬한 전투 먼저 치룬 셈입니다

 

뭉친 실타래 한 올씩 더디게 풀려지던

인고의 시간들 줄을 서고,

한동안은 그냥 흐르고,

그리고는 마침내 화전민처럼 떠다니던

내 마음이 땅으로 내려섰습니다

흩어지는 구슬같이 하루와 하루가

망각 속으로 지워지던 그런 날들

비로소 멈추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현재란

지속에 대한 측정이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아주 가까운 곳에서도

현재라는 하나의 시간

계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성으로부터 경계를 가진 배타적 몸으로,

무의식으로부터 의식으로,

외부로부터 내부로,

불행 습관에서 행복의 입맛다심으로,

그저 건조할 뿐인 체념에서

어떤 것을 추구하는 소망으로,

찰나의 순간에서 영원의 향상성으로....

나는 어느새 변해졌습니다

 

해서 나 이제 당신에게

긴 진실을 고백하려 합니다

뭐든 다 아는 체 허세를 부리고 있었을지라도

난 애초 당신을 만난 그 때

본질적 사랑이 무엇인지는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실은 아주 작은 아이보다도 더 몰랐던 겁니다

당신을 만나면서

대체 내게 무슨 일 생긴 건지,

정작 어떻게 처신해야할지도

도무지 몰랐습니다

 

오히려 당신을 통해 남몰래 사랑 배우며

시간 가면서 보여지는 무수한 문들을

하나하나 열어보았습니다

그것이 나 자신의 내부에 난

미로의 문들인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결국은 당신이 내 내부에 묻혀있었던

사랑의 비밀 전부 다 연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매몰된 채로 죽어갈 수도 있었던

내 남은 생애 속 사랑의 비밀을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그럼으로 나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

사랑을 사랑하는 남자로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

이 세상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당신 내게 더불었기에....

      

 

詩作 note

긴 내용이다. 시라고 하기에는 다소 멋쩍은 편지글이다. 예전 어느 시절, 긴 시간을 격리된 공간에서 몸부림치며 하루들을 살아낼 적에, 몸살나게도 그리운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애모의 마음을 담아 적었던 고백시 성격의 장문시인 셈이다. 연말이 가까워져가는 이즈막에 어쩐지 한 번 쯤은 되돌아보고 싶은 본연의 인성을 드러내려 애썼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면서, 이번 주 시로 골라보았다.

 

철부지 시절을 지내고, 질풍노도의 시기도 겪어낸 이후에, 나름 제법 익었다고 자부하는 삶이었던지라,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충고는 안중에도 없이 독단적으로 결단하고 처신을 하면서, 오판인지도 모르고 제 살 깎아먹기를 반복하던 어리석음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이탈되었었으나, 그게 어쩌면 연약하고 미욱한 우리네 인생의 표준인지도 모른다고 여겼었다. 아니, 그런 자위라도 하고 있어야 모진 목숨줄 연명하는 데 그나마라도 작은 한 줄기 빛이 되고는 했으니 차마 서글픈, 그리고 엄청스레 고단한 나날들이었지 싶다.

 

어찌 보면 산다는 게 차라리 죽어 없어지는 것 보다 결코 행복하지 않은, 그리고 현실을 살아간다는 데 어떤 의미도 부여하기 힘든, 그런 암담한 날들이었으니 오죽했으랴? 그래도 그런 날들이 결코 흐르지 않을 것 같았던 조급함과 불안함을 비웃어주면서 소망의 시절은 다시 도래됨으로써, 삶의 굴곡이, 신의 섭리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음을 체험하며, 지금은 이렇게 관조의 눈으로 나이 먹어가고 있으니 퍽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월 무상이라고 하던가? 흐르는 세월에 참다운 의미를 얹으며 올 해의 삶을 되돌아본다.

 

다윈상이라는 것이 있다. 한 해의 죽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바보같은 짓으로 죽은 사람을 뽑아 기리는 것이다. 다윈상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멍청한 유전자를 일찌감치 죽여 없애, 인류의 유전자 풀을 더럽히지 않은 공로를 기린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고인의 모독에 해당한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 비난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죽은 사람들이 죽은 이유가 너무 황당하고 웃겨서 항상 인기가 있는 상이기도 하다.

 

번지점프를 했는데 줄이 뛰어내린 높이 보다 길어서 죽은 사람 이야기라던가, 술을 먹고 누가 용기 있나 자랑하다 체인쏘로 머리를 잘라버린 사람이라던가, 어떤 바보들은 여자를 걸고 오토바이로 치킨게임을 했는데 둘 다 피하지 않아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이야기다. 정작 그 여자는 그 바보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뉴스들을 전 세계에서 모아 심사하고 시상하는 단체가 있다니 참 우스운 일이다.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 중에서도 해당자가 있었다. 대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장애인이 전동차를 타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가 빨리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문을 여러 차례 들이받고 문이 박살나면서 떨어져 죽었다는데 그는 그 해의 다윈상 1위가 되었다고 한다. 그냥 웃어넘길 수 만은 없는, 의미심장한 속 뜻이 담겨있는 해프닝이다. 아무리 요지경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귀하고 소중한 자신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만용과 착각이 불러오는 비극을 희화화하는 것 같아서, 여간 뒷 맛이 씁쓸하지 않다.

 

그리고 힘겹고 버거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보통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인간이라는 권한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난, 주어진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이거늘, 그런 고귀한 권리를 하잘 것 없는 휴지쪼가리처럼 여긴다는 건 그야말로 크나 큰 죄악이나 진 배 없다.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하나같이 소중하게 여기는 인간애가 새삼 그립게 떠올려져 숙연해지는 아침이다.

 

오늘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 하고, 그리고 다가오는 내일의 태양을 기쁜 마음으로 맞는 삶의 자세가 필요할 때다. 또한 내일을 위해서 오늘 분수를 지키는 것이 현자의 도리다. 사람은 각자 자기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면서 살아간다. 그 중에서 좀 특출난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 성공한 사람들, 유능한 사람들.... 그런데 난 사람들인 이들에게 중국의 현인인 묵자가 경고를 하고 있다.

 

여기 다섯 개의 송곳이 있다. 제일 먼저 부러지는 것은 제일 예리한 송곳이다. 그리고 다섯 자루의 칼이 있다. 제일 먼저 닳아 없어지는 것은 제일 잘 드는 칼이다. 물맛이 최고로 좋은 우물이 제일 빨리 마르고, 가장 곧고 키가 큰 나무가 제일 먼저 베어진다.” 뛰어난 점이 때로는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용기가 있는 자는 그 용기로 인하여, 능력이 있는 자는 그 능력 때문에 질시를 받고 화를 입기도 한다. 묵자는, 유능한 인물이 그 지위를 지키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고 역설한다. 그러므로 겸손하고 분수를 지키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는 것이다.

 

하모니에 대해 생각해본다. 서로의 개성과 장점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조화, 나와 상대를 같은 선 상에 올려놓으려면, 즉 동등하려면, 서로를 적절히 낮추고 높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상에 독불장군이란 있어서도 아니 되고, 또 존재하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모니는 같은 분량의 몫으로 조합이 되어질 때 이루어지는 거라 생각한다. 속해 있는 집단, 특히나 또래 집단에서 꼭 필요한 지혜인 듯 싶기도 하다.

 

밝은 햇살을 품고 또 하루가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의 하루가 희망차게 열렸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소중한 오늘을 무의미하게, 때로는 아무렇게나 보낼 때가 있다. 하루 하루가 모여 평생이 되고, 영원히라는 말이 된다. 어떤 사람이 이 하루라는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하루는 곧 일생이다. 좋은 일생이 있는 것처럼 좋은 하루도 있다. 불행한 일생이 있는 것 같이 불행한 하루도 있다. 하루를 짧은 인생으로 본다면 하나의 날을 부질없이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곧 좋은 일생을 만드는 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는 선물 이며 시간 이고 생명 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이라는 소중한 우리의 하루를 아름답게 보내야 한다. 그렇기에 필자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최선을 다하련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렇다. 삶이란 것도 사랑이란 것도. 늘 함께할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잃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진실이 있다. 영화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에서의 대화도 그런 우리의 못남을 잘 말해주고 있다.

 

늙기 전엔 아무도 젊음이, 삶이 좋은 줄을 몰라. 죽기 전엔 삶이 얼마나 고마운 건지 모르지.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전 보다는 훨씬 더 열심히 살아갈 거야.” 우리 앞에 펼쳐진 삶은 항상 풍성하게 펼쳐진 잔치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곧잘 삶이 아름답지도, 살아볼 가치도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건 결코 삶이 빈약한 잔치이거나 황폐한 잔치이기 때문이 아니다.

 

삶에 초대된 우리들이 그 잔치를 즐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잔치에 아무리 좋은 음식과 재미있는 일이 있더라도 우리가 흥미가 없다면 그 잔치는 결코 아름다울 수도 재미있을 수도 없다. 지금 당신 앞에는 과연 무엇이 있으며, 당신은 그것에 흥미를 가지고 휘파람을 불며 임하고 있는가? 아니면 무관심해 시큰둥한 반응으로 임하고 있는가? 이 시점에서 신중히 돌아보기를 바란다.

 

바쁘게 생활하면서 피곤하고 지쳐있을 때, 간혹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하고 생각해 볼 때가 있을 것이다. 부인이나 가족들에게 괜한 투정과 짜증스러움을 부리다가도 한 잔의 술에 마음을 풀어보며, 내게 주어진 운명이려니 하면서 넘어가게 되지만, 그럴 때 가족들의 소박하지만 성의있는 이벤트나 부인의 따뜻한 마음과 정성을 담은 말 한마디에 용기와 활력이 불끈 솟아오르며 지쳐있는 모습이 저절로 사그러짐을 느낄 수 있다.

 

각계 각층에서 자기 역할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그 모습을 멋있고 대견스럽게 생각해주는 것은 그 누구 보다도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지 않겠는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금강석처럼 견고한 사랑으로 결속되어, 서로 눈빛만 마주쳐도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그야말로 찰떡궁합같은 연분으로 행복한 미래가 주어질 것이다. 어떤가? 마음만 알아주면 된다고, 그냥 방관하고 있지는 않는가? 지금 힘들어 하는 가족을 위하여 오늘 행동으로 옮겨본다면, 큰 감동을 받아 더욱 더 화목하고 아름다운 가정으로 이어지는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구나.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주지 않는구나.” 그러다 혼자 웃으며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수도 있는데, 내가 먼저 이 세상을 향해 말을 건네면 되는 건데...” 그러면서 문득 하늘을 보면서 곱게 웃는 연습을 한다. 누군가, 또 무엇인가가 나에게 성큼 와주기만을 기다리면 안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먼저 손 내미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네는 연습도 물론 필요하고. 손을 내밀 때는 다정한 눈빛으로, 말을 건넬 때는 포근한 목소리로, 아름다운 이웃을 향해 손을 내밀며,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말을 건네면, 메아리처럼 아름다운 미소가 자신에게 되돌아올 거라는 생각을 하는 오늘 하루가 참 행복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길을 가던 내가 잘못이냐, 거기 있던 돌이 잘못이냐를 따진다. 넘어진 사실을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인생길을 가다가 넘어졌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이 길을 가면서 같은 방식으로 넘어지기를 반복한다면 분명히 잘못은 당신에게 있다.

 

가지고 싶은 건 한없이 많은데 주고 싶은 건 하나도 없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자. 끝없이 먹기는 하는데 절대로 배설을 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뱃속에 똥만 가득 들어차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진실을 못 보는 것은 죄가 아니다. 진실을 보고도 개인적인 이득에 눈이 멀어서 그것을 외면하거나 덮어버리는 것이 죄일 뿐이다.

 

왜 사람들은 행복을 잡기 위해서 라고 말하면서 한사코 행복의 반대 편으로만 손을 내미는 것일까?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져버릴 사람이 있고,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있을 사람이 있다. 혹시 당신은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질 사람을 환대하고,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있을 사람을 천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때로는 하찮은 욕망이 당신을 눈 멀게 하여 하찮은 사람과 소중한 사람을 제대로 구분치 못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나니 훗날 깨달아 통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한 남자가 매우 예쁜 여자가 있어서 프로포즈를 해서 결혼했다. 얼굴은 눈부시리만큼 예쁘고 아름다운데 살아보니까 너무 게을렀다. “아이고! 내가 눈이 삐었지. 저걸 못 봤구나.” 그래서 부지런한 여자가 너무 그리워서 적당한 때에 그 여자하고 이혼을 했다. 그리고 아주 부지런한 여자하고 결혼했는데 그 여자는 부지런한 것은 좋은데 입까지 부지런했다. 얼마나 말이 많은지 1365일을 혼자만 말을 하더란다. “아이쿠! 내가 저걸 못 봤구나."

 

그래서 그 여자하고 이혼하고 말없는 여자와 결혼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말이 없는 건 좋은데 너무나 사치스러웠다. 그래서 장점 보고 결혼했다가 단점 보고 이혼하면서 아홉 명하고 결혼해 봤는데, 끝에 가서 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아홉 명하고 결혼해 봤는데, 결국 인생은 가위 바위 보다.” 가위 바위 보는 이기기만 하는 경우가 없다. 그리고 지기만 하는 경우도 없다. 가위는 주먹한테 지지만 보자기한테는 이긴다. 주먹은 가위한테 이기지만 보자기한테는 진다. 이기기만 하거나 지기만 하는 것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관계이고 우리네 인생이다.

 

조선시대 숙종 임금이 어느 날 야행을 나갔다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지나게 되었다. 다 쓰러져가는 집들을 보며 혀를 차고 있는데 어느 움막에서 웃음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닌가? 기와집이 즐비한 부자 동네에서도 듣지 못했던 웃음 소리에

숙종은 어리둥절했다. 숙종은 그 까닭을 알아보기 위해 움막에 들어가 주인에게 물 한 사발을 청했다.

 

그 사이 문틈으로 방안을 살펴보니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는 새끼를 꼬고 올망졸망한 어린 아이들은 짚을 고르고 있었다. 할머니는 빨래를 밟고 부인은 옷을 깁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들 얼굴이 어찌나 밝고 맑은지 도무지 근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숙종은 주인에게 물었다. “형편이 어려워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밖에서 들으니 이 곳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더이다.”

 

주인은 희색을 띈 얼굴로 빚 갚으며 저축하면서 부자로 삽니다. 그래서 저절로 웃음이 나는가 봅니다.” 궁궐로 돌아온 숙종은 금방 쓰러질 듯한 움막에서 살며 빚도 갚고 저축도 한다는 말이 의아해, 뭔가 숨겨둔 보물이 있을 것이라 여겨 몰래 조사를 시켜 알아보았다. 하지만 조사 결과 그 집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숙종은 다시 그 집을 찾아가 주인에게 예전에 했던 말의 뜻을 물었다.

 

주인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부모님 봉양하는 것이 곧 빚 갚는 것이고, 제가 늙어서 의지할 아이들을 키우니 이게 바로 저축 아닌가요? 어떻게 이 보다 더 부자일 수 있겠습니까?” 그 뒤 궁궐로 돌아온 숙종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가난한 집 주인의 말을 떠올리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데 근간으로 삼았다고 한다.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나 오래된 역사 등을 통해서 배우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아주 사소한 삶의 지혜가 때로는 모든 진리에 우선한 경우도 있다는 예이다.

 

이제 정말 열흘 남짓 남은 올 해다. 순식간에 지나쳐간 올 한 해의 삶을 반성하고 회한에 젖어 있을 시간이 없다. 부지런히 한 해를 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 해의 계획과 각오를 다질 때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마음 먹은 대로 실천을 하기 위한 다짐은 언제나 새롭게 거듭나는 자신의 삶과 함께 해야 한다. 내년 연말에 똑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부터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미래를 향한 초석이 되어야 하며, 행복을 기원하는 든든한 밑받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날들은 더욱 소중한 하루들이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원본 기사 보기: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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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18 [01:02]  최종편집: ⓒ 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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