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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3.20 [01:24]
문화·관광 > 늘 푸른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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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내 뱃속에 숨어…하마 쪼로록’
(POET VIEW) 林 森 새움 트누나
 
림삼 시인
 

 

 

 

  

 

 

                           ‘새움 트누나’

 

 

 

 

 

 





 


 林  森

 

 

 

 

 

 


 뭐가 그렇게나 아쉽니 ?

 여러달 뱃속 품고 있었으면

 이제 그만 순산하라는데,

 


 질겨빠진 바람 꼼수

 슬몃 앞장세우고

 할 일 몰라 하리망당

 늦장부리는 걸음새

 


 촘촘 그물 꽃샘추위로

 황사 한움큼 먼저 던지고

 팔짱낀 넉장거리

 눈 흘기는 밉상하고는

 


 그런데,

 그래서 옷깃 여미려는데,

 


 아직인 줄 알았던

 코 앞 조오기

 자라난 볕살에

 하마 쪼로록 새움 트누나

 


 겨우내내 뱃속에 숨어

 나 죽었소 힘빼고

 빈 가지 흔들더니

 살짝 파란 눈 새로 뜨누나

 

 

 

 詩作 note

 

 

정말이지 이 지겹고 야속한 미세먼지만 아니라면 훨씬 더 상큼하고 청아한 얼굴로 다가왔을 계절, 봄인데. 터놓고 말하자면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더럽고 칙칙한 대기오염에 시달리는 나라가 되었는지 돌이켜보니 한심하고 한탄스럽다. 대관절 누구를 원망하고 무엇을 탓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도 없고, 적당한 대책이나 방비를 모색할 수 조차 없는 이 현실에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물론 정치를 잘못했다거나 정책을 잘못 수립했다고 위정자를 싸잡아 욕할 수는 없다. 이것이 실은 하루 이틀 그릇된 행보로 인한 결과일리도 없고, 일부 인사들의 오판이나 실수로 야기된 결론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 인류가 이미 오래 전부터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당장의 효과나 편의를 추구한 탓에 스스로 발등을 찍은 것에 대한 자연의 경고이며 심판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실상 애초에 이리 될 줄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 확실하게 결과를 몸소 체험하게 된 오늘에 와서 새삼스레 방정을 떨고 소란을 피우면서, 이런 저런 단편적인 이슈를 생산해봤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런 방법도 제시하지 말고 그저 맥 놓고 철푸덕 주저앉아 넉장거리로 게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어차피 자연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없고, 승산은 단 1%도 없는 게임이라는 것도 잘 아는 바이다. 그렇지만 이 피해를 모두 선량한 소시민이 떠안고 괴로워해야 한다는 숙명이 그저 더없이 화날 따름이다. 막연하게 발표되는 수치만 믿으면서 개인적으로 미세먼지 방지 마스크만 뒤집어 쓰거나, 아무데도 나가지 말고 문 꼭 꼭 걸어 잠그고 집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라는 경고에 따르려니 울화가 치솟아 견디기 힘들다.

 

 

 

어쩌다가 한 줌 바람이라도 불어와, 비 한소끔이라도 뿌려주어서, 대기가 조금 맑아지면 멀리 건너다보이는 산자락을 바라보면서, 오늘은 겨우 숨 좀 쉬겠구나 하면서 서로 얼굴 마주보며 인사말을 나누는 처지가 되어버렸으니 참말로 가소롭고 나약한 인간들의 힘에 저절로 실소가 피어난다. 그리도 으스대고 잘 난 체 하더니만, 온 세상을 지배하면서 역사적으로 대단한 치적을 이루어낸 현대 문명이라고 떠벌리더니만, 꼴 좋게 되었다. 쌤통이다. 봄이 왔건, 새움이 트건, 뿌연 누리에서 그렇게 고생하면서 절실하게 반성하고, 애타게 후회하면서, 하루의 삶에 급급하면서 고생 좀 해봐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아!

 

 

 

거울 보면서, 보여지는 얼굴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욕 좀 신랄하게 하고 나니 그래도 조금은 속이 풀린다. 에이, 못난 것들. 인간이라는 제목의 목숨줄들. 감히 자연의 뜻을 거스르고, 대자연의 장엄한 저력을 무시하면서 기고만장하더라니... 삼천리 강산에 이미 봄이 지천이다. 무슨 잘못을 했건, 어떤 실수를 저질렀건, 그저 자비롭고 그윽한 대자연은 우리에게 다시 따스한 숨결과 아름다운 입김 보내 새롭게 눈 뜨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망과 꿈을 담은 마음으로 오늘을 열라고 제언한다. 비록 힘들지만, 견디기 버겁지만, 그래도 그냥 좌절하지 말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라, 그리 소리한다.

 

 

 

당장 닥쳐온 현실에 화들짝 놀라 이런저런 대책을 급하게 강구하지 말고, 멀리 보면서 침착하고 고요한 심성으로 대안을 준비하라고, 그렇게 정치를 하고, 그런 정책을 수립하라고, 지도자들에게, 위정자들에게 그렇게 충고하고 있다. 이제라도 자연의 힘을 인정하고, 자연과의 협력을, 상생을, 그리고 조화를 추진하라고 말이다. ‘작은 생선은 자주 뒤집으면 먹을 게 없다. [若烹小鮮]’ 이는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마치 작은 생선을 굽듯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그만 생선을 구울 때 최악의 방법은 불을 세게 높이고 이리저리 뒤집는 것이다. 조그만 생선은 스스로 익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을 때 가장 완벽하게 익는다. 결론적으로 ‘무위’가 오히려 생선을 제대로 익게 만드는 것이다. 유능한 리더는 직원들의 업무를 시시콜콜 간섭하거나 그들의 무능을 탓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직원들이 최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의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소리 지르며 강하게 군림하기보다는 그들의 열정을 끌어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는 조그만 생선을 굽듯이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약팽소선’의 원칙, 오늘날 조직의 리더는, 나라의 지도자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절실히 보여주는 철학이다. 실수투성이인 인간 앞에 조용히 찾아준 봄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겸손과 겸양과 평화가 가장 우선해야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덕목이 바로 이 ‘무위’의 의미인 것을 잊지 말자.

 

 

 

어차피 이리 된 것을, 이미 출발한 버스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본들, 달라질 일 무에 있으랴.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단 한 가지다. 이제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면서 잘 살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책무이며 준엄한 숙명이다. 나 하나 만이라도 자연에 대항하지 않는 순리와 진솔의 참된 의미를 실천하면서 제일 먼저 나서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다지자. 그리고 세상을 그윽한 향기와 평화스러운 정경으로 물들이기 시작하자.

 

 

 

아름다운 작가 ‘김윤탁’의 ‘꽃은 져도 향기를 남긴다’에는 우리가 꽃처럼 살아야 할 이유, 향기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아름다운 필체로 적혀있다. 그 중에 일부를 옮겨본다. - 숨 쉬기가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늘 숨을 쉬고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들이쉬고 내쉬는 숨이 도무지 쉬어지지 않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호흡할 수 없어서 가슴을 치며 간신히 숨을 몰아쉬곤 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는 암울한 순간이 마치 끝이 없는 터널처럼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향기를 통해 깊은 명상상태에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후 향기는 제게 단순한 향기가 아니었습니다. 향기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와 연결하는 연결고리였으며, 몸과 마음,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될 때 우리 영혼은 고통을 겪습니다. 자신이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 앞에 망연자실합니다. 분노와 좌절, 절망에 몸과 마음은 상처로 만신창이가 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난 자리에는 그 사람만의 향기가 남습니다. 꽃은 져도 그 사랑스럽던 향기는 대기 중에,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 감돌고 있습니다. 그 향기는 들숨으로 내게 들어와 나와 함께 하고, 날숨으로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언제까지나 내 가슴 속에 향기로 남아 함께 할 것입니다. -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우리 곁에서 향기를 주고 떠나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남긴 따스한 애정이 지금도, 이렇게 선명하게 감돌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치유되어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세계적인 배우 ‘오드리 햅번’의 말이다. 내일을 향기롭게 열어줄 희망이라는 작은 씨앗을, 대책없이 더럽혀진 누리를 정화시켜줄 씨앗을, 삭막하고 각박한 인심을 따스하게 데워줄 씨앗을, 지금 심기 시작하면 된다. 지금, 봄이니까 말이다.

 

 

 

5만 명 중 한명 꼴로 나타나는 ‘선천성 대사효소결핍증(PKU:페닐케톤뇨증)’을 앓고 있는 ‘임승준’씨.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아들을 보는 어머니는 당시 심정에 대해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다.”고 말했다. 숨만 붙어 있을 뿐 누워만 있는 아들. 대소변을 받아내며 간병한 지 9년 만에 비로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홉 살까지 꼼짝도 못하던 아이가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고난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희귀병, 1년 치 약값만 1억 원이 넘었다. 집을 줄여야 했다. 아이는 하루라도 약을 먹지 않으면 생명을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련기관에 수십 번 넘게 민원을 넣어 겨우 약에 붙는 세금을 낮추고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기적은 이루어졌다. 지금 승준씨는 한 기업의 도서실에서 일하고 있다. 독립해서 일을 하는 것이 가족과 승준씨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절망의 끝에서 힘들어하지 말자. 우리에게 당장은 보이지 않을 뿐, 희망은 저 멀리에서 한 걸음씩 우리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크리스토퍼 리브’. 그는 1978년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명문 ‘코넬대학’ 출신이었으며 수려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한 마디로 잘생기고 공부까지 잘했던 것. 그가 출연한 슈퍼맨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슈퍼맨은 이후 히트의 여세를 몰아 4편까지 이어졌으며 ‘크리스토퍼 리브 = 슈퍼맨’이라는 공식이 생겼다.

 

 

 

부족함이 없던 시절을 지냈던 리브는 그러나 1995년 낙마 사고를 당하게 되고,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얼굴을 제외하고 모든 신체가 마비되는 증상. 한 순간의 사고의 댓가 치고는 너무 비참한 결과였다. 물 한 컵도 혼자 마실 수 없고 대소변도 가릴 수 없으니 본인은 얼마나 비참한 기분을 느꼈겠는가? 그는 한 때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그는 바로 옆에서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하여 다시 부활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9년간의 눈물겨운 재활 의지. 그러자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의사들도 고개를 내저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그는 신체의 70%이상의 감각을 되찾게 된 것이다. 그는 척추 마비 환자들을 위한 자선재단을 설립했고, 불편한 몸으로 영화에도 출연한다. 장애인에게 재활 의지를 심어준 공로로 그는 2004년 9월 미국의 ‘노벨 의학상’으로 불리는 ‘래스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절망의 끝에서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불굴의 정신으로 살고 간 그는 정말로 슈퍼맨이었다.

 

 

 

요즘같은 때에 반드시 되새겨야 할 이야기이기도 하다. 희망은 반드시 있다. 그러니 오늘 죽을 것처럼 행동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면서 살자. 아울러 포기와 양보의 의미를 잘 구분하면서 매일의 삶에 적용시키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포기와 양보는 둘 다 나보다 먼저 누군가를 앞에 세울 수 있음을 말한다. 포기는 영원히 내가 뒤에 남는다는 말이고, 양보는 얼마 후 내가 앞에 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은 비록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있지만 결코 포기가 아닌 양보가 될 수 있어야 된다. 양보를 배려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에 의해 내가 앞에 섰을 때, 내가 먼저 나섬을 배려해준 누군가를 좋은 느낌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내가 누군가의 앞에 서 있음을 교만이 아닌 겸손으로 받아들이고, 지금 내가 누군가의 뒤에 서 있음을 포기가 아닌 양보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힘겨운 삶이 조금 더 살 만 하지 않을까?  

 

 

 

살아가는 일이란 것이 어쩌면 늘 누군가와 어깨를 겨루어야 하고, 경쟁 관계 속에 우열을 가려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 때는 좋은 동반자였다가도 느닷없는 라이벌의 관계가 되기도 하는 것이 삶이다. 원치 않는 누군가와 비교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본의 아닌 적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라이벌이라 이름하여지는 이들이 없다면 우린 안일함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대상이 누구라 하더라도 스스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도록 어떠한 동기 부여를 해주었다면, 적이라 하여 무조건 배타만 할 것은 아니지 싶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다. 지금 한 걸음 뒤에 서 있는가? 그렇다면 잠시 양보하고 있는 것이다. 컴컴한 방이 있다. 거의 죽어있는 방이다. 그런데 누군가 스위치 하나만 찰칵 올려준다면 그 방은 거짓말처럼 살아난다. 환하게 빛난다. 사람의 가슴도 똑같다. 살다보면 우리를 찾아오는 무수한 절망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 바로 그 순간 빨리 ‘희망의 스위치’를 올리자. 찰칵!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빛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앞에 그림자가 짙을수록 내 등 뒤의 빛이 그만큼 밝기 때문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은 언제든 내 의지로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반갑게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바뀌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어둠 속에 있을 수도, 또 빛 가운데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우리에게 찾아온 선물, 바로 희망의 스위치다.

 

 

 

여우의 발은 험한 산길을 걸어 다니느라 가시에 찔리고 돌멩이에 부딪혀 성한 날이 없었다.  여우는 어느 날 인간들이 도로 포장하는 것을 숨어서 보았다. 돌자갈길 위에 아스팔트를 입히자 감쪽같이 반들거리는 길이 되지 않는가. 여우는 옳거니 하고서 저도 원대한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토끼를 잡아서 토끼의 껍질로 자기가 다니는 산길을 덮는 일이었다. 그날도 여우는 토끼를 잡았다. “미안하지만 어르신이 이 산중길을 편히 걸어 다니기 위해서는 너희가 희생할 수밖에 없구나.”

 

 

 

그러자 토끼가 말했다. “아니, 어르신. 이 산중 토끼를 다 잡아도 토끼 가죽길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 꼬리를 잘라서 어르신의 발에 가죽신을 만들어 신으신다면 산중길이 토끼 가죽길이나 다름없을 텐데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십니까?” 당신도 혹시 세상을 당신 마음에 들게끔 하느라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세상 만사를 바꾸기보다 당신 마음 하나만 바꾸면 될 것을 말이다. 바라보는 안목에 따라서 결정되어지는 진실의 모습도 달라진다.

 

 

 

한 농부가 있었는데, 그는 유난히 땅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그는 가난한 소작농으로 시작하여 자기 땅을 조금씩 마련하게 된다. 땅을 얻기 위해서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사를 하고 돈을 모아 사기도 한다. 그렇게 땅을 계속 넓혀가던 그는, 어느 날 한 마을의 촌장으로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받는다. 다른 데서 밭 한두 마지기 살 수 있는 아주 적은 양의 돈만 내면,  하루 동안 걸어서 표시할 수 있는 모든 땅을 자신에게 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다만, 반드시 해가 떨어지기 전에 자신이 출발했던 원래 위치로 돌아와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농부는 촌장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아침 해가 뜨는 것을 기다려서 출발한다. 농부는 되도록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 중간에 쉬지도 않고 물도 먹지도 않고 달린다. 그리고 죽을 고생을 한 후에 아슬아슬하게 해가 지기 전에 많은 땅을 확보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촌장으로부터 ‘농부는 이제 많은 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는 말을 듣는 순간, 그 농부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 숨져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2미터도 채 안 되는 무덤에 묻히게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에든 욕심이 과해지면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게 된다. 그 과한 욕심은 단지 수단에 불과한 것을 목적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고, 그 수단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다보면 수단이나 조건 자체가 신앙처럼 되어버려, 우리의 삶 자체가 어리석은 행보가 되고 만다. 무엇엔가 욕심을 부리고 있다면 한 번쯤 ‘왜?’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하여 보기를 바란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시 단지 수단인 것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 또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도.

 

 

 

영국 ‘옥스퍼드 의과대학’ 연구팀은 어린아이와 어른의 웃음에 대해 연구하다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어린아이는 하루에 400~500번을 웃는다고 한다. 그런데 장년이 되면 이 웃음은 하루 15~20번으로 감소된다고 한다. 인간은 기쁨과 웃음 속에서 태어나고 점점 기쁨과 웃음을 잃어버리며 끝난다는 것이다. ‘노먼 빈센트 필 박사’는 ‘쓸데없는 걱정’이란 글에서 한 연구기관의 조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사람이 하는 걱정 중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 사건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진짜 사건에 대한 걱정이 4%라고 한다. 이미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우리가 다 아는 정보다. 결국 사람들은 96%의 쓸 데 없는 걱정 때문에 기쁨도, 웃음도, 마음의 평화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켜 유지할 것들은 많이 잃어가고, 버리고 잊어야 할 것들은 무던하게도 지니고 있는, 조금은 어리석은 우리들의 삶인 것 같다. 다시 찾아온 봄을 새로 시작하면서 함께 할 사람들과 지낼 시간을 위해 웃기 연습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 인상이 달라진다.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분까지 좋아지게 된다. 그런 걸 왜 아끼겠는가? 웃음, 내가 웃어 가까운 사람들이 기쁘고, 그 기쁨이 또한 나의 기쁨이 될 터인데, 새움 트는 것처럼, 새순 돋아나는 것마냥, 새봄 퍼져가는 것같이, 우리 주변을 작은 미소로 물들이기 시작하자. 사랑의 향기로 차츰 차츰 채워 나가보자.

 

 

 

 

 

 

 

 

 

 

 

 

 

 

 

 

 

 

 

 

 


원본 기사 보기:womansen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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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12 [21:23]  최종편집: ⓒ 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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