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넘어 온 고개고개마다 단단한 내공은 보기보다 꽉 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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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훗날의 행복을 꿈꾸던 아이!
애오개에서 태어났다. 굴레방 다리에서 자랐다. 상고를 졸업하기 6개월 전에 은행원이 되었다. 주민등록증을 받고 나서 독립을 하였다. 내가 선택해서 살아온 오늘 63세가 되었다.
일기장에-궁전과 오막살이-를 자주 적으며 먼 훗날의 행복과 화목과 배부름을 꿈꾸던 그런 아이였다. 정월 대보름, 추석 대 보름달을 보며 간절히 두 손 모아 빌었던 기도는 늘 잘 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잘이라는 말 안에 발등에 떨어지는 욕구와 미래를 설계하는 욕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싶은 망상까지 포함되었다.
아직도 정동진이나 호미곶에서 일출을 볼 때 두 팔 벌려 함성을 지르면서 잘이라는 말은 늘 첫마디에 나온다. 그런 아이가 자라 늙어가면서도 버스를 타고 낯설게 지나치던 동네에 우연히정착하며 옮겨 살면서도 어릴 때의 간절함은 주름진 손목을 모으면서 다시 그런 아이로 돌아간다. 언제나 앞날을 지금보다는 다르게 좀 더 나아지게 해달라는 일방적인 부탁이었다.
미성년자일 때는 늙은 홀아버지의 계획대로 취업을 위한 교육으로 성장했다. 경제권을 가질 수 있을 때 제일 먼저 한 것은 홀로서기였다. 어설픈 독립은 뒤늦은 반항이었다. 짧은 직장 생활의 자유는 23살 결혼으로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금 안에 사는 시발점이었다.
오로지 내가 선택한 주사위에 나는 줄타기의 아마추어로 살아왔다. 나에게 부르던 호칭은 시간이지나면서 남들처럼 평범했다. 미스 리, 아내, 며느리, 엄마, 아줌마, 할머니로 변화하는 과정을 돌아본다. 내 나아기 먹은 것은 거짓말 같아도 돌상을 받았던 자식이 40살을 향해 가는 것을 바라보고 그만큼 살아 왔구나 긴 숨은 쉰다. 온전히 멀쩡히 헤쳐 나온 나에게 박수를 치고 위로를 한다. 고비 고비 커다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그 때는 그 것을 몰랐다.
복이 없다고 좌절하였다. 덕이 없다고 포기도 했다. 내 손에서 놓친 기회를 아쉬워했다. 아까운 순간들을 낭비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어느 때도 남들의 도움 없이 살아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관계성에서 나는 독립체가 아니었다.
그것을 아는 기간은 참 비싼 수업료와 엄청난 함정과 끔찍한 충격을 받고 부딪치고 이겨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1분 1초도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니었다. 이만큼 살아와서 깨닫는 것이다
● 경험과 경력과 지식들은 잠시 숨어있다.
현재 무직이다. 수입 제로, 지출은 품위 유지비 명목의 취미 생활 경비 뿐이다. 캥거루족은 진행형이다. 아직도 자식을 끼고 돌보고 후원하는 보호자이다. 노인 회관 회원증 발급자이지만 무임 승차나 기초 연금 대상자는 아니다. 허울 좋은 가정 주부라고 적지만 실질적인 실업자이다. 취업을 할 수 없는 가정사에 온 종일 집에 묶여 있는 동거인이다.
겉보기에는 편안한 노후이지만 주머니는 늘 비어 있고 노력 봉사 중인 가사 노동자이다. 국민 연금 수령자가 되는 날이 온다면 조금씩 용돈이라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어정쩡한 나이이다. 지금은 무엇을 시작하려는 도전이나 새로운 것을 얻어 보람을 얻는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삶의 곡선에서 정지 상태이다. 건강관리만이 유일한 바쁜 일상이다. 육신으로 하는 일과 시간을 위한 평소 체크 관리 목록을 수시로 확인하며 조절하며 지내는 것이 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사회 활동이나 대인 관계에는 금전적 투자와 시간 나눔이 필요 하지만 내 형편에 맞게 내가 맺어 온 상대성 관계를 유지하거나 정리하고 있다.
내 주머니에서 과도하게 지출되는 부분은 나를 혼자 있게 하지 않으려는 블럭 쌓기이다.
조금씩 분수에 맞는 공동체 안으로 섞이면서 나의 소비하던 목적은 나의 노후의 발걸음을 향할 곳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런 나이의 중장년이다. 2년 후부터 사회 보장 제도의 수혜자로 사는 커트라인은 유일한 희망이다. 외출의 자유와 행동 반경의 범위까지 자유로워질 것이다.
노동력은 집 안으로 들어와 나의 경험과 경력과 지식들은 잠시 숨어있다. 그것들의 발효 기간까지 나는 나의 몸을 잘 관리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신발을 신을 때 마다 넘어지지 말자 한다. 겉옷을 입을 때마다 감기 걸리지 말자 주문을 외운다. 내 몸은 공유물이다.
혼자 살아오지 않은 은혜에 보은하는 준비는 매일 매일 내가 걷는 걸음의 이유이고 방향이다. 행복을 생산하는 자리로 이동하여 혼자라고 좌절하고 폐쇄하려는 약한 마음을 찾으려 한다. 그 빈 곳을 보충하려는 일은 내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내년에 내가 몸 담고 있을 그 어떤 단체이다. 먼 훗날 나의 표정의 스케치가 된다.
갈 곳이 없다는 것은 나의 게으름이다.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나의 본분 이탈이다. 순간마다 도움없이 살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나의 손과 발과 마음이 닿는 곳마다 전류가 흐르도록 서서히 충전 중이다. 용량이 많은 소쿠리 안에 준비 작업은 계속 되고 있다.
지금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마냥 풍족하거나 한없이 여유만만 하지는 않다. 소소한 고충도 있고잠깐의 애환도 있다. 그러나 견딜만하다. 불편하거나 부족한 것들은 굳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동안 넘어 온 고개고개마다 단단한 내공은 보기보다 꽉 차 있다.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회의 울타리에서 내 자리가 남아 있다는 희망이 나의 보람이 되고 있다. 그 자리를 위한 도전은 지치지 않는다. 소리 없이 내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다.
그런 아이가 오늘도 여성발전센터를 방문했다. 새일 찾기는 생존을 위한 돈벌이가 아니다. 약속 나눔이다. 경험이 많은 여성으로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을 위로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는 일이 우선이다. 60이 넘은 나이부터 80세 어눌할 때까지 나루터가 되기로 한다. 건너가는 길목의 역할로 희망과 감동의 배역에 충실하고 싶다. 나이만큼의 나름대로의 힌트를 밥상에서 존재하는 된장과 김치처럼 어울리고 싶다. 이만큼의 인생으로 두 팔을 벌리려 한다.
낙엽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낙엽의 나이에 나의 색깔로 물들어 가고 있다. 발 닿는 이에게 낙엽이 주는 그만큼을 건네고 싶다. 늙어가는 개성대로 단풍잎이 되어 누구의 손길에 머물고 싶다. 싱싱한 김장 재료인 배추와 무의 청춘이 지금의 무한한 가능성이 되었다.
무청과 시래기가 겨울내내 입맛을 돋우듯 건강한 나는 그런 아이의 천진함을 꺼내 사회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가슴 뛰는 순진함으로 다시 무지개를 만들고 싶다. 나의 내일은 그 어린 아이가 꿈꾸던 무지개를 들고 씩씩하게 전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