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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1.04.13 [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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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프리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호세아
 

 

▲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린도전서 1920)고 말씀하고 계신다.    

 

 

죽음의 문제? 본질적인 해방!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린도전서 19-20)고 말씀하고 계신다.

 

또 사도 바울은 내가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립보서 1: 23-24)는 무슨 의미일까.

 

바울은 내가 그 두 사이(사는 것과 죽는 것)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다고 했다.(빌립보서 1:23) 여기 떠난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나루에인인데, 이 말은 다음 세 가지 경우에 사용된다.

 

, 텐트의 로우프를 풀고 말뚝을 뽑고 캠프를 걷어치운다는 말로 쓰인다. 그와 같이 죽음은 이 세상의 캠프를 철거하는 것이다.

 

둘째로, 정박한 배가 로우프를 풀고 닻을 올리고 출항한다는 말로 사용한다. 죽음이란 영원한 천국과 하나님께로 향하여 떠나가는 항해와 같다.

 

셋째로 문제를 푼다는 말로 사용한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 11: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한복음 11:25-26)

 

그는 죽지 않고 살면 너희들을 볼 수 있고 복음을 더 전할 수 있으니 좋고, 죽으면 고난의 생활이 종식되고 주님 곁으로 가니 더 좋다는 뜻이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뜻이다.

 

생명의 문제! 혈육 전도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요한복음 5:39)

 

얼마전 미국의 갤럽여론조사에 의하면, 놀랍게도 천국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무려78%에 이르고, 지옥의 존재를 의심치 않는 사람도 60%나 된다. 의미 시사점은 아무 종교도 갖고 있지 않다고 대답한 사람들 중에서도 46%가 천국이 있다고 믿으며, 지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의 비율도 34%나 되었다.

 

얼마전 미국의 갤럽여론조사에 의하면, 놀랍게도 천국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무려78%에 이르고, 지옥의 존재를 의심치 않는 사람도 60%나 된다.  

 

 

지옥은 우리가 지금까지 성찰해 온 것 가운데 가장 긴박하고 심각한 절대 명제이기에 사람들은 가능한 한 가장 깊은 수준에서 통찰이 전방위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도 더 귀한 것이다. 지옥은 내가 가서도 안 되는 곳이요 다른 사람이 가도록 절대 내버려두어서는 아니 되는 곳이다.

 

지금 우리는 내 가족이 지옥 가고 있는 것을 구경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내 부모와 내 형제를 지옥에 보내서는 안 된다. 이웃이나 친구가 지옥에 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몸부림치며 강권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통렬하게 몰입할 필요가 있다. 사도 바울은 고백은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바로 여러분의 부모와 형제, 친구들이 그 무서운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어찌 잠잠할 수 있겠는가?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로마서 9:2-3)

 

바로 여러분의 부모와 형제, 친구들이 그 무서운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는데 어찌 잠잠할 수 있겠는가? 자신은 구원을 받았는데 자기의 부모 형제나 자녀가 또는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 형벌 지옥 불에 갇혀야 된다면 이 얼마나 비극이겠는가?

 

어떤 초등학교 학생이 있었다. 이 소년은 예수를 믿고 큰 은혜를 받았기에 나이에 못지않게 전도 역시 열심히 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소년의 부모는 교회에 나올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 소년은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서 매일 간곡하게 기도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지옥에 가지 않도록 예수 믿고 천국가게 해 주세요.” 하며 눈물로 기도했다.

 

▲ 히브리서에서는 사람이 한번 태어나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브리서 927)고 말씀하고 있다.    

이 소년은 주일 아침마다 교회에 가자고 부모님께 성화이었다. 그럼에도 소년의 부모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너나 열심히 믿어. 우리는 조금 있다 믿을게하면서, 일절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집을 다녀오다가 교통사고로 그 소년이 그만 죽고 말았다. 소년의 부모는 그 슬픔을 무엇으로 달랠 길이 없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소년의 방에서 노트 하나를 발견하였다.

 

아들의 일기였다. 또박또박 눌러 쓴 아들의 글씨를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이곳 저곳을 읽다 세상과 작별하기 며칠 전 쓴 일기에 시선이 멈추었다. 거기에는 이런 기도문이 적혀 있었다.

 

하나님, 우리 엄마 아빠가 예수님을 믿게 해 주세요. 우리 엄마 아빠가 지옥에 가면 안 돼요. 엄마 아빠가 예수님을 믿기 위해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죽기를 원합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예수님을 믿게 해 주세요.”

 

아빠는 그 일기를 읽고는 그만 통곡을 하고 말았다. “우리 아들이 예수 믿기를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구나. 네 소원대로 예수를 믿으마소년의 부모들은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으며, 곧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아들이 믿었던 예수의 은혜가 너무 커서, 소년의 아버지는 복음 사역에 자신의 나머지 생애를 온전히 주님께 받쳤다. 비록 소년은 먼저 하늘나라로 갔지만 마지막 날에는 온 가족이 하나가 되어 하늘나라에서 만날 것이다.

 

생생하게 살펴본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슬프고 두렵고 절망적인 것이 아님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의 죽음은 오히려 더 큰 축복의 삶으로 이어지는 통로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지옥은 누구를 위해 준비되었나?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해방될 무렵 한 영국 병사가 집으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최근 우리는 매일매일 진격해 나가면서 많은 독일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어느 날 한 나치 광신자가 아주 심하게 부상당한 채 들려왔습니다.

 

▲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태복음 25:41) 

 

그는 표정이 굳어 있었고, 사나웠으며, 고집이 세어 보였습니다. 그는 즉시 수혈을 해야 했는데, 별안간 그는 의사에게 그 피는 영국 사람의 피겠죠?’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요, 좋은 영국인의 피죠라고 의사가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만일 이 피를 거절하면, 당신은 죽게 되오.’

 

그러자 그 나치당원은 자랑스럽다는 듯이 잘라 말했다. ‘그러면 나는 차라리 죽겠소.’ 잠시 후 그의 몸은 시체가 되어 들려나갔다. 영국 병사들은 이 불쌍한 히틀러 추종자에게 탄식했다. ‘바보같으니!’라고 말이지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독일인보다도 더 바보스럽게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산 하나님의 구원을 받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버틴다. 이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더욱 바보스러운 짓이다.

 

그러나 죽음은 한번 죽는 것으로 절대 종식되지 않는다. 사후 반드시 지옥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엄중히 통찰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분명히 지옥의 존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옥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지옥은 믿는 자들을 위해 둔 곳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서 지옥을 만든 것이 아니다. 지옥은 원래 마귀와 그의 사자를 위해서 준비된 것이다.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태복음 25:41)

 

히브리서에서는 사람이 한번 태어나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히브리서 927)고 말씀하고 있다.

 

▲ 하나님을 모르고 자살한다는 것은 구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매우 불행한 일임을 투명하게 즉시해야 한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을 모르고 자살한다는 것은 구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매우 불행한 일임을 투명하게 즉시해야 한다
.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한 국가 중 자산율 4, 자살증가율 1위라고 하는데 굉장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괴로운 인생에 대한 도피처로 자살을 선택한다. 사는 것이 너무 괴롭고 힘들기 때문에 자살을 탈출구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결코 괴로운 인생에 대한 도피처가 될 수 없다. 기독교에서는 자살은 아주 큰 죄악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스스로 삶을 차단하는 것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한 중대한 거역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범죄 행위 중 가장 큰 죄에 해당하는 살인죄이다. 살인이란 비단 남의 생명만 죽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타인이든 본인이든 살아있는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것 자체가 용납지 못할 살인 행위이다. 그래서 자살은 인간 사회의 가장 흉악한 범죄인 살인죄의 범주에 든 것이다.

 

세상에서는 어떤 죄보다 살인죄를 지은 죄수에게 내려지는 형벌이 가장 무겁다. 자살은 명확히 살인죄이다. 이에 자살자에게도 무거운 형벌이 따른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살인죄에 대한 형벌을 받을 수 없지만 저 세상에서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속담에 노루를 피하다 범을 만난다.”는 말이 있다.이 속담은 사소한 피해를 피하려다가 더 큰 낭패를 본다.’ 는 의미이다.

 

자살은 결코 근본적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도리어 혹을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이는 어리석은 행위이며 자신을 확실한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자살자가 가는 지옥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고통스런 곳이다. 우리는 아무리 사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자살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 박용규라는 목사님이 있다. 그분은 장로교 합동 측의 목사로 성남제일교회를 개척하여 45,000명 이상 모이는 대교회로 성장시키신 분이다. 또 송림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우리나라에서 최연소 교장과 이사장이 되었고, 책도 영화화 된 저 높은 곳을 향하여외에 57권이나 썼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하나님의 징계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셨다. 하지만 지옥의 크기가 너무 컸다. 지옥의 크기에 깜짝 놀란 목사님은 천사에게 천사님, 지옥의 인구는 얼마나 됩니까?” 하고 물었다.

 

믿기 힘든 말입니다만, 천사가 하는 말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과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의 비율이 1,000:1이니라라고 대답했다 한다.

 

존 뉴턴목사는 82세를 일기로 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임종 직전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천국에 들어갈 때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첫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천국에서 만나게 될 것이고, 둘째는 내가 예상했던 사람들이 거기에 없으므로 놀라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잘못해서 교도소에 간다면 죄의 형벌에 따라 수감이 감해지기도 하고 사면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옥은 희망이란 없다. 어제도 오늘도 고통, 내일도 고통, 영원히 고통 가운데 있는 곳이다.     

 

여러분이 잘못해서 교도소에 간다면 죄의 형벌에 따라 수감이 감해지기도 하고 사면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옥은 희망이란 없다. 어제도 오늘도 고통, 내일도 고통, 영원히 고통 가운데 있는 곳이다.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인가? 당연히 구원이다.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귀한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거듭 강조 드린다. 왜 우리가 지옥에 관하여 민감해야 하는가? 첫째, 지옥의 존재를 듣는 것이 복음이 전해지는 좋은 통로가 된다. 그것은 불신자들이 진실로 지옥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아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둘째, 지옥의 두려움에 관해서 듣는 것은 당신의 양심에 충격을 줄 수 있고, 당신의 잘못된 삶에서 당신을 돌이킬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리고 신앙심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자주 지옥의 두려움을 들을 때, 죄를 지으려는 마음이 감소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령 충만하여 죄를 이기고, 악한 원수 마귀의 속삭임을 끊어 버리고 천하보다 귀한 영원을 구원하는데 힘을 다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큰 축복으로 도우실 것이다.

 

조현삼 목사가 쓴 생명의 편지와 절망적이었던 폐병과 투병하여 이기고 한국신학대학 학장으로 아름다운 일생을 살다 가신 김정준 목사님의 시 가운데 내가 죽는 날이란 시를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인가? 당연히 구원이다.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을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귀한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조현삼 목사가 쓴 생명의 편지

 

예수를 믿는 결단이 없으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가지 아니하면

지옥은 저절로 가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무관심 속에

지옥을 부인하며

지옥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옥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어쩌면

내가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잠재의식의 공포에

그 영혼이 지배받고 있습니다.

 

대연각 호텔에서

큰불이 난 적이 있습니다.

호텔 속의 사람들은 창문을 깨고

밖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뜨거운 불길이 덮쳐오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모하게

뛰어내렸습니다.

 

지옥에도 불이 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뜨거운 불이 있습니다.

그곳엔 뜨거움을 피해

뛰어내릴 창문도 없습니다.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곳입니다.

 

지옥은 분명 존재합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사람의 양심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분명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옥은 사람이 부인한다고

없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지옥에 들어간 다음엔

천국으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 믿는 길만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길 외에 다른 길은

다 지옥으로 통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예수님을 믿으세요.

지금 이 땅에선 기회가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 달려

당신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

그분을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눈을 감고

천국에서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 이 땅에서 눈을 감고 천국에서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김정준 목사님 내가 죽는 날

 

내가 죽는 날!

그대들은 저 좋은 낙원에 이르니

찬송을 불러 주오

또 요한 계시록 20장 이하를

끝까지 읽어 주오

그리고 나의 묘패에는

이것을 새겨 주오

임마누엘단 한마디만을!

 

내가 죽는 날은

비가와도 좋다

그것은

내 죽음을 상징하는

슬픈 눈물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내 죄 씻음을

받은 감격의 눈물!

 

내가 죽는 날은

바람이 불어도 좋다

그것은

내 모든 이 세상

시름을 없이 하고

하늘나라 올라가는

내 길을 준비함이라

 

내가 죽는 날은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비치어도 좋다

그것은

영광의 주님 품에 안긴

내 얼굴의 광채를 보여 줌이라!

 

내가 죽는 시간은

밤이 되어도 좋다

캄캄한 하늘이 내 죽음이라면

저기 빛나는 별의 광채는

새 하늘에 옮겨진 내 눈동자이리라

 

나를 완전히

주님의 것으로 부르시는 날

나는 이 날이 오기를 기다리노라

다만 주님의 뜻이라면

이 순간에라도 닥쳐오기를!

번개와 같이 닥쳐도

번개와 같이 함께 사라지기를!

 

그 다음은 내게 묻지 말아다오

내가 옮겨진 그 나라에서만

내 소식 알 수 있을 터이니!

 

내 얼굴 볼 수 있을 터이니!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나그네 같은 인생을 살 때 죽음을 준비하며 사는 것이 엄청 지혜로운 삶이며 또한 나를 멸망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이 너무 현명한 삶인 것이다.

 

사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현세에 살면서 너무도 많은 신비 속에서 싸여 살았다. 우주의 심오한 진리 속에서 또 인생을 사는 삶 속에서 풀지 못한 문제들, 더욱이 영의 세계와 천국 등의 모든 문제가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면서 확연히 풀리게 되는 것이다.

 

분명히 기억하시길 바란다. 참된 신앙심이 없이는 영혼의 만족과 행복이 없다. 참된 신앙이 없이는 인간 심령의 깊은 기갈에 만족을 줄 수가 없다. 또 진정한 깨달음 없이는 깊은 인생 문제에 대해 해답을 발견할 길이 없다.

 

▲ 참된 신앙심이 없이는 영혼의 만족과 행복이 없다. 참된 신앙이 없이는 인간 심령의 깊은 기갈에 만족을 줄 수가 없다. 또 진정한 깨달음 없이는 깊은 인생 문제에 대해 해답을 발견할 길이 없다.   

 

고통에서의 해방, 절망에서의 해방, 가난에서의 해방, 그리고 비인격적인 대우에서의 해방이 너무 그립고 절실하지 않은가? 자비를 거절하면 마지막에 공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그때는 강제이다.

 

그러므로 아무런 타협도 소용이 없고 힘도 소용없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팔이 그를 지옥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영원히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곳,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족한 곳, 여러분은 꼭 그곳에 가시길 바란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최우선적으로 사활을 걸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치밀한 대비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의 안식처를 위해 노심초사 분주했다면 그 인생이야말로 보람 있고 가치 있고, 영광이 넘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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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06 [18:21]  최종편집: ⓒ 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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