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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17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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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 '호스피스'
삶의 여정! 마감에 대한 성찰과 탐색(17-4)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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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hospice)의 체험기

죽음의 손은 그 누구도 뿌리칠 수 없는 것이요 참혹하기 그지없는 엄숙한 현실이다. 죽음과 사후 세계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을 자아내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져들게 된다.

죽음은 죽어 가는 자에게도 돌보는 자에게도 생소한 것이다. 미지의 것에 대해 사람은 그것을 절대 응시하려 하지 않고 극력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죽음은 기필코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기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의 저자인 일본의 ‘가시와키 데츠오’는 어른이 소유하고 있는 죽음의 개념이 만들어지는 것은 9살 정도로 잡는 것이 정확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가시와키 데츠오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도록 하자. 9세 이전의 어린이들은 죽음은 수면과 같이 일시적인 것으로 일정의 시기가 오면 또 살아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 노인들은 죽음을 가깝게 느끼기 때문에 싫든 좋든 죽음의 굴레를 떨굴 재간이 없다.   

 
이와 상반되게 노인들은 죽음을 가깝게 느끼기 때문에 싫든 좋든 죽음의 굴레를 떨굴 재간이 없다. 유독 노인들은 인간관계의 범위가 더욱 협소해진다. 한층 좁아진다. 벌써 사회의 제1선에서 물러나 친구도 적고 인간 관계의 넓이는 겨우 친족과 가족에 머무른다.

즉, 이별하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의 수가 적다. 자기의 할 바는 다 했다는 기분과 함께 인간관계의 좁아짐이 외형적으론 죽음의 수용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죽음의 수용이 가장 어려운 대상은 장년층이다. 한창 일하는 장년의 시간대에는 죽음을 떠올리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장년 때는 사회적으로 책임을 수반하는 인간관계가 넓어지는 시간이자 심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장년의 환자가 죽음을 자각할 때, 이별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이 많다. 자녀는 아직 어리고 이 세상에서는 아직 하고픈 것,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많다.

‘차마 죽을 수 없다’ 이는 세상에 대한 집착의 강함을 애절하게 표명한 것이리라.

인간이 불치병에 걸려 억지춘향격으로 시시각각 죽음에 몰두하지 않으면 안 될 때, 이 세상의 자유와 명예와 재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후회막급의 심정으로 썰물 같은 속도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 이 세상의 자유와 명예와 재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후회막급의 심정으로 썰물 같은 속도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죽는 모습은 각양각색인바, 특히 암이란 말은 사람에게 온갖 정서적 파장을 수반한다. 그 반응은 환자의 연령, 성격, 가족 환경 내지 사회적 배경 나아가서는 암의 발병 정도에 의해 달라지나 일반적 논법으로 말하자면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처절한 고독이 빈번하게 제시된다.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현 우리 세대에서 죽음이란 현실을 간접적으로 대치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료에 있어서 연명 기술의 현저한 발전은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로서 병원 등의 의료 기관의 비율을 폭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죽는가’의 저자 셔윈 B. 눌랜드(Sherwin B. Nuland)는 이렇게 말한다. 통계에 의하면 현재 미국인의 80%가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고 한다. 50%로 나타났던 1949년 이래 그 수치는 계속 증가하여 58년에는 61% 그리고 77년에는 70%로 급속하게 늘어났다.

항암 요법을 받고 있는 환자의 악 30%, 진행된 암환자의 약 70%에서 통증을 호소하며 이들 중 80% 정도가 2가지 이상의 다발성 통증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환자는 현재 극심한 통증이 앞으로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무섭기 때문에 오히려 죽음을 원하거나 자살을 기도하는 예도 있다.

근래 항암요법의 발달로 암환자의 생존 기간이 연장되면서 통증만 적절하게 제거해 주면 환자는 삶의 질(quality of life, QOL)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암환자의 종말기에도 각 분야의 의료 인력의 유기적인 협조 하에 이들 환자 및 보호자의 간병을 위해 ‘호스피스(hospice)’ 시스템이 뿌리내리고 있는 추세에 있다.

▲ 환자는 현재 극심한 통증이 앞으로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무섭기 때문에 오히려 죽음을 원하거나 자살을 기도하는 예도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불치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무려 13년간 관찰한 전문가(최화숙)의 체험 수기를 통해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의 절규와 순응을 여과 없이 고스란히 전달하도록 한다.

암말기 환자와 가족을 전인적(全人的)으로 도와주고 사별 후 유가족 관리까지 포함하는 호스피스에 대해 생생히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면서였다. ‘입원환자의 영적(靈的) 간호 요구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호스피스에 대해 세부적으로 접하게 되었고 석사학위를 받은 후 곧바로 이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제목의 논문을 쓰게 된 것도 나름대로는 충격적 경험이 있어서였다. 오래 전 이화여대부속 동대문병원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중에 마주치게 된 한 환자가 있었다. 젊은 남자 환자였는데 폐렴으로 호흡 곤란이 심해 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병실마다 돌면서 환자들이 돌출 문제가 없는지를 살피고 있었는데 나를 갑자기 누군가가 붙잡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바로 이 환자였다. 심한 호흡곤란으로 숨을 헐떡이며 떠듬떠듬 하는 말이 “선생님! 죽은 다음에 천국이 있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갈급하는 열망이 깃든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면서 다그치는 듯한 그 환자의 언행에 순간 강한 충격을 받았다.

아마 숨이 가쁜 환자의 경우, 의료진에게 “선생님! 숨 좀 편안히 쉴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리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이 사건으로 인해 환자에게는 신체적인 요구뿐만 아니라 동시에 영적인 요구도 지대함에 절대 등 돌릴 수 없게 되었다.

임종환자들이 삶을 마감하는 그리 길지 않은 여정에서조차 각 사람에 따라 천양지판의 별스런 반응이 나타나면서도 대략 다음의 공통성을 추출할 수 있게 한다.


예비적 우울
S동을 지나다 보면 H부인의 경우가 유독 떠오른다. 그녀는 사려 깊고 조용한 여성이었다. 오른쪽 유방암으로 수술 후 1년 동안 무난하게 지내다 재발하여 항암 치료를 하였다. 치료 후 3년 정도 건강한 생활을 보내다 다시 발병하여 호스피스에 의뢰된 경우였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이 환자를 방문하였는데 래포(Rapport-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신뢰)가 형성되면서 H부인은 저음의 목소리로 지긋하게 자신의 지나온 삶과 질병에 대해 고백을 하였다.

남편은 고위 공무원이었으며 자녀들도 다 장성하여 막내가 대학생이었던 H부인은 6년 전 처음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이동식 침대에 누워 수술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하나님! 살려만 주신다면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하면서 간곡하게 기도를 드렸고 그 후 깊은 신심(信心)을 가지게 되었다 하였다.

물론 수술 당시 그녀는 크리스천이 아니었으며 더구나 수술실 앞에 가기 전까지는 한 번도 하나님을 생각해 본 적도, 불러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동식 침대에 누워 곧 수술실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지나간 삶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전까지 그녀는 자신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의욕에 사로잡혔고 인간이 노력하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박봉인 남편의 월급을 가지고도 알뜰하게 살며 최선을 다해 자녀를 양육하는 등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으나 한순간 인생에서 자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음을 철두철미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암이 재발하여 완치를 위한 치료는 어렵고 겨우 증상 조절을 위한 호스피스 치료가 필요한 상태에 이르자 “인생이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전부가 그분에 의해서 되어지는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자각하게 된 것이다.

호스피스 치료를 받기 시작한지 두 달 정도 지나면서부터 H부인은 ‘예비적 우울'을 경험하기 시작하였다.

임종을 앞둔 사람의 심리상태를 연구했던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퀴블러로스에 의하면 ‘예비적 우울'이란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면서 미리 슬퍼하는 상태'이다.

H부인 역시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알았으며 그것을 생각하며 슬퍼하였기에 감정은 한없이 낮아져서 말이 없고 고요하였다. ‘이기적으로 살아온 삶이 후회스럽다' 이제 곧 닥치게 될 자신의 떠남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세상과 다가올 세상을 함께 공존하는 듯했다.

이런 감정적 분위기는 삶의 일상적인 소란스러움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인데 환자는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면서 웃고 있으면 “저․게․뭐․이․저․렇․게․재․미․있․을․까?” 의아스러워진다 하였다.

한동안 ‘예비적 우울 단계'에 머물러 있던 H부인은 어느 날 나에게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지나온 삶을 가만히 돌이켜보니 모두가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온 삶이요, 이웃과 국가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서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하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애에서 자신이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보았다고 하면서 장기 기증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필요하면 시신 전부라도 기증하고 싶으니 방법을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가정 호스피스 팀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어졌고 먼저 가족의 동의를 타진한 다음에 암 환자의 장기가 이식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H부인에게 남편과 자녀들에게 자신의 이런 뜻을 직접 알리고 동의를 얻도록 하였으며 의사소통이 여의치 않으면 돕겠다고 하였다.

한편으로 장기 기증 및 시신 기증에 대해 알아본 결과 암환자의 경우 각막 이식만이 가능하며 시신 기증은 의과대학생들의 해부학 실습을 위해 쓰여진 후에 뼈를 보관하거나 정중하게 장례를 치러 드린다고 하였다.

H부인은 기뻐하면서 이 두 가지 모두를 원하였으나 가족들의 생각은 사뭇 달랐다. 갑작스런 H부인의 말에 가장 충격을 받은 이는 남편인 듯하였다. 자녀들은 울면서도 어머니의 뜻이 그러하다면 따르겠다고 하였으나, 남편은 이에 동의하지 않고 면담을 요청했다.

호스피스 사무실로 찾아온 H부인의 남편은 이 문제는 생각해 보지도, 상상해 보지도 않은 것이었다고 하면서 일단 나의 견해를 물었다.

사실, 장기 기증을 더더욱 시신 기증을 하고 싶다는 환자의 말을 듣고 그 방법을 알아보는 동안에 이 문제는 나 자신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호스피스를 시작하고 나서 장기 기증을 제안한 것은 H부인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는 필자 자신도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환자가 꺼낸 화두로 인해 내 가슴도 콩닥거리게 된 것이었다.

“필자인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죽게 되었다고 해서 내 몸 일부를 떼어주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더구나 내 몸을 해부하라고 내어주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해부학 실습실에서 보았던 시신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러한 화두에 대해 필자 역시 자신을 성찰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남편의 질문에 대답보다는 부인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되물어 보았다. 남편은 몹시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은 신앙인도 아니고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 없으나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 희망 사항을 무조건 거절할 수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것이다.

남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본 필자는 환자를 포함하여 가족회의를 열어 의논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였다.

먼저 H부인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할 기회를 주고, 그 다음 나머지 가족이 한 사람씩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해서 결정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집에 돌아간 H부인의 남편은 그 날로 가족회의를 소집하였다.

당시 H부인의 상태는 이미 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죽기 2~3일 전에 도달하는 임종 과정에 진입하고 있었기에 본인 스스로 원활한 장기 이식을 위해 병원에 입원할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기력이 너무 떨어지기 전에 가족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의 의사를 밝히도록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가족회의에서 H부인은 “인간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였으며 무의미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에 종지부를 찍을 즈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가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고 학생들의 해부학 실습을 통해 의학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하면서 그렇게 된다면 기쁜 마음으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부인이 떠나고 난 뒤 못 견디게 그리움을 느낄 때 무덤마저 없으면 어디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사별을 슬퍼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시신 기증에 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래서 H부인도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하여 각막만 기증하기로 절충되었다.

가족회의에서 이렇게 결정이 내려진 후 바로 입원한 H부인은 이튿날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평화스럽게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안과팀이 즉시 각막을 채취하여 H부인의 양쪽 각막은 다른 두 사람에게 각각 이식되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남긴 것은 생전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되어 기뻐하는 두 사람의 감사, 우리 어머니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삶을 살겠다는 자녀들의 다짐, 그리고 그 아름다운 마음을 길이 기억하는 남편의 그리움이었다.

군인의 아내로서 B동에 살았던 W부인. 그녀는 전문대학을 졸업 한 딸과 고등학생인 아들을 둔 50대 여성이었는데 남편과 함께 세계일주 여행을 한 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라서 장군인 남편이 은퇴하기만 기다리며 악착 같이 돈을 모았다.

많지 않은 남편의 월급으로 두 자녀를 키우며 땅을 사서 일꾼들을 독려하여 손수 아담한 2층 양옥집을 짓고 기본적인 생활비 이외에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에 합격한 시누이가 찾아와 입학금만 빌려달라고 울면서 간청했을 때도 거절하였고, 심지어 매월 일천 원의 꽃동네 기부금조차도 아까워서 내지 못하였다고 한다.

막상 남편이 전역한 후 이제 막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볼까 하는 시점에 그 부인은 자궁경부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암'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죽음'이라는 단어를 연상하지만 사실 암환자의 5년 이상 생존율은 50%나 된다.

그 중에서도 자궁경부암은 위암, 유방암과 함께 장기 생존율이 높은 부위의 암이다. 그러나 이 부인의 경우는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 등등 그 어떤 것도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진단 받은지 2개월만 완치 불가에 잔여 수명이 불과 6개월 이내로 남았다는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에 의뢰됐다.

이 부인은 평소 자신의 건강도 꼼꼼히 챙기는 편이어서 6개월마다 자궁암 진단 검사를 진행해왔다 한다. 진단 받기 3개월 전에 한 검사에서도 ‘정상'이라는 응답을 받았는데 생각지 않게 말기 상태의 자궁경부암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것이다.

감정의 파도가 휩쓸고 간 다음에 W부인은 자신의 삶에 대해 격하게 통탄하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선하게 살 것을 그랬다고 후회하는 말을 하였다.

인생이 어느 날 문득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인 줄 알았더라면 주위 사람들에게 인간애를 베풀면서 선하게 살았어야 하는데 자신은 너무 못되게 살았다고 거듭 말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오로지 남편과 함께 세계 일주를 하고 싶어서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개의치 않고 그것만을 목표로 돈을 모으고 또 모아왔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친척들의 마음에 너무 못을 많이 박으며 살아 왔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돈도, 명예도 출세도 쾌락도 추구하지 않는다. 이제 그런 것들은 빛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차분하게 삶을 마감하는데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직감적으로 아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아닌, 보이지는 않으나 엄연히 실존하는 세계를 의식하면서 벽돌 하나하나를 쌓듯 나머지 삶의 부분들을 정성스럽게 잘 쌓아야 하는 것이리라.

호스피스 경험자로서 또 하나의 세계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다. 이것은 영(靈)의 세계인데 보이지 않는 세계다.

인간이란 건강할 때는 보이는 세계에 치중하지만 병이 들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생각하게 되는데, 죽음에 임박한 말기환자들에게는 이 세계가 즉, 이승의 세계와 저승의 세계가 또렷해진다.

인간에게 두 눈이 있는 것은 이 두 세계를 잘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 이 건강할 때는 보이는 세계에만 매달리고 그 세계가 다인 줄 알고 착각하며 산다.

그러나 육체의 기력이 쇠하고 삶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특히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려고 할 즈음 그때에 이르러서야 한 눈으로는 이 세상을, 다른 한 눈으로는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이때 옆에 있는 가족들조차도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환자가 헛것을 본다며 이상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임종 과정을 겪고 있는 환자에게는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대사건인 것이다.

두 세계
골수염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였던 L군은 열일곱 살이었다. 15세인 중학교 3학년 때에 발병하여 부단히 치료하였으나 폐와 뇌에 전이가 되어 결국은 호스피스에 의뢰된 경우였다. 형과 어머니가 극진히 L군을 보살피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폐에 병소가 있는 환자들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호흡 곤란이 극심해지는데 산소 호흡기나 약물을 투여해도 증상 조절이 용이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애를 태우게 된다.

L군 역시 처방 약을 복용하고 있었으나 숨이 몹시 가쁜 상태였다. L군의 어머니는 울고 있었고 L군은 자신의 걱정을 이야기하며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동행했던 성직자가 L군을 안고 기도해주자 잠시 후 L군은 잠이 들었고 숨소리도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저녁에 L군이 소천(召天)하였다는 연락을 받고 밤늦게 빈소를 방문하였다. 그런데 평소에 조그만 일에도 눈물을 보이곤 하던 L군의 어머니가 슬픔에 잠긴 울음 대신 오히려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 "아마 우리 아이는 꼭 천국에 갔을 거예요. 확신이 들어요."     
의아해 하면서 L군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를 묻자 뜻밖의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호스피스에서 방문한 다음 아들은 잠을 잘 잤는데 다음날 아침부터 아들이 자꾸 무엇이 보인다며 하늘을 쳐다보면서 웃고 놀라워하더라 했다.

전혀 아프다는 소리가 없었으며 호흡 곤란도 별로 없었는데 계속해서 하늘을 쳐다보며 “그 옆에 빛나는 분은 누구시냐”고 아들이 묻기에 엄마는 “무엇이 보이냐, 엄마는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하자 나중에는 L군이 “우리 엄마는 큰일났다. 나는 천국 가는데 우리 엄마는 지옥 가겠다.”고 하면서 엉엉 울더라는 것이었다.

당황한 엄마가 어찌할 수가 없어서 아무 것도 안 보이지만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아 저거 말이니? 나도 이제 보인다. 라고 하자 아들이 너무 좋아하면서 하늘의 모습을 엄마도 보고 있는 줄 알고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하더라 하였다.

그 후 저녁 무렵에 L군이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엄마, 저거 보았지요? 나 먼저 갈 테니 나중에 오세요.” 하며 숨을 거두었다는 말을 하면서 “아마 우리 아이는 꼭 천국에 갔을 거예요. 확신이 들어요.” 라고 했다.

얼핏 들으면 이 현상이 얼른 납득이 되지는 않지만 죽음에 임박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동시에 보는 일은 흔하게 일어나곤 한다.

장갑을 끼었다 벗으려면 손이 빠져 나오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우리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갈 때는 대개 수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때 잠깐 잠깐씩 양쪽 세계를 다 보게 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돌아가시기 2~3일 이전부터 이런 현상을 경험하지만 더러는 그보다 훨씬 일찍부터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헛것이 보인다
죽음을 앞둔 분들이 “머리맡과 발 곁에 누가 와 있다.” 라고 하거나, “누가 나를 부른다.” 라고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이것을 “헛소리 한다” 라고 하며 마냥 무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병실이나 방안에 있을지라도 함께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환자들에게만 보이므로 무심코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 이것은 분명 헛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무엇이다.
이것은 분명 헛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무엇이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그 경험을 말해 줄 수는 있어도 그 물체를 보여줄 수가 없을 뿐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앞둔 이들 앞에 무엇이 보인다고 했을 때 여러분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단순히 헛것에 불과하다고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이것은 체험과 비체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적인 실례를 들어본다. 하루는 잠을 자는데 비몽사몽간에 무엇인가가 내리누르고 있어 숨을 쉴 수가 없을 만큼 답답하여 의식이 깬 적이 있었다.

하지만 비체험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가위 눌렸다.’ 라고 하거나 아니면 ‘기가 허해져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어떤 것이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희미하게 형체만 보이는 영물인데 너무 힘에 세서 밀쳐 버리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도 없었다. 후에 성경을 정확히 알게 되면서 이 세상에는 악한 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위눌림의 실제 상황을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간략히 소개하여 본다.

작년 겨울인가? 그때 가위눌림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헛것이 자꾸 보여요. 먼저 제가 가위를 자주 눌리는데요. 무서워서 눈을 안 뜨거든요.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몸 전체가 완전 마비된 듯 움직이지도 않고 느낌은 영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랄까.

절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제 속에 있는 뭔가를 끌어당기는 그리고 귓가에서 계속 그 ‘아-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또 많이 겪어서 적응될 만할 법도 한데 진짜 미치겠습니다. 그리고 헛걸을 제 눈으로 직접적으로 잠깐 볼 때도 있고.

유리를 통해서 본적도 있고. 황당하게 세탁기 투명한 스티커 붙여져 있는데 거기서 또 비춰져서 본적 있고. 머리감다 본적도 있고. 하여튼 많습니다.

그런데 저 되게 건강하거든요. 감기도 잘 안 걸리고. 기가 약한 건가요? 어떻게 해야 되죠? 진짜 미치겠거든요.

또 다른 실례이다.
어느 날, 그러니까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의 휘영청 닭 밝은 새벽녘! 저의 어릴 적 시골집은 함석으로 된 위채와 위청마루에서 넓이 뛰기 하면 갈 수 있는 아래채의 문이 마주보고 있었어요.

혼자서 큰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저의 꿈에 너무 선명하게 한사람은 키가 크고, 한사람은 키가 작은 아주 잘생긴 사광모를 쓴 두 청년이 무표정한 얼굴로 저의 대문(철제문이었음)에 서서 우리 집을 바라보고 있었죠?

소스라쳐 놀라 잠을 깨어보니 꿈이었는데 도저히 무서워 문을 열 수가 없어 “엄마! 문 좀 열어보셔요. 무서워요 엄마!” 하며 외쳤습니다. 나는 꿈에서 깨어나기 전 그 사람들을 보며 무언지 기분 나쁜 예감이 들어 우리 집엔 없다고 가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꿈에서 깨었죠. 지금도 30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에 닭살이 돋아 옵니다.

다시 앞의 호스피스 전문가의 체험담을 연속 들어보기로 한다.

49세의 폐암 말기 환자 K씨. 이분은 호스피스에 의뢰될 당시에 밤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고 해서 도무지 잠을 자지 못하겠다고 했었다.

K씨는 진단 받았을 당시 1년간 항암제로 치료하여 완치되었다가 재발된 사례로 골전이(骨轉移)가 있었다. 재발소식을 접한 환자는 병원 진료실에서 각목을 휘두르며 화풀이를 하는 바람에 병원 진료를 마비시키기도 했다. 의료진들은 말기 상태인데다 소란을 계속 피우는 환자에 어찌할 바 몰라 호스피스에 의뢰한 경우였다.

1차 방문시 그의 아내는 지쳐 있었으며 아이들은 겁에 질려 있는 상태였다. 환자는 심한 기침과 가래, 통증뿐 아니라 불면증이 있어 밤에도 깨어 있다고 하였다.

K씨는 밤에 불을 끄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낮에 일하고 온 아내가 고단하여 잠시 졸면 발로 차서 깨우고 화를 내는가 하면,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밥을 먹고 있으면 갑자기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곤 하였다.

얼굴은 초췌하고 잠을 못 자서 그런지 눈 밑이 그늘지면서 축 쳐져 있었다. 통증이나 혹은 기침 때문에 자지 못하는가 생각하여 그 이유를 질문하였더니 뜻밖의 대답을 하였다.

“3주전부터 밤이면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내 이름을 부르며 ‘金○○, 나와!' 하고 부르기에 혼쭐났다”는 것이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세 사람인데 남자 같다면서 매일 밤 나타나서 같이 가자고 한다는 것이다. K씨는 내가 방문한 첫 번째 호스피스 환자였는데, 잠자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이분의 대답은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당시 우리 호스피스 팀은 K씨의 상태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영적인 고통'이라고 보았고 이 문제는 영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환자의 집 근처에 있는 성직자를 찾아가 이 문제를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하기로 하였다.

마침 환자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교회'라고 간판이 붙은 교회가 하나 있어서 담임목사를 찾아가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다행히 그분이 쾌히 응낙해 주시고 즉시 환자를 방문하여 상담해 주셨다.

몇 번의 상담을 통해 K씨는 더 이상 밤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며, 호스피스 치료를 통해 기침이나 통증 등의 증상도 어느 정도 조절이 되면서 무난히 잠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잠을 잘 잘 수 있게 되자 그 동안 가족을 불편하게 하였던 K씨의 짜증과 화내는 것이 누그러졌으며 무엇보다 가족들 또한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되어 한결 안도감에 빠져들었다.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는 호스피스 팀과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서 환자와 부인은 자신들이 살아온 고단하였던 삶의 여정을 토로하였다.

이 환자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 가셔서 큰 형님과 함께 살았는데 도시락을 싸주지 않았던 큰형수에 대해, 넓은 과수원이 있으면서도 그 한쪽에 자신을 묻혀달라는 간청을 매정하게 거절한 형님에 대해, 그리고 자신을 치료하였던 의사에 대해 분노와 함께 적어도 그들보다는 오래 살아야 한다는 오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자신이 진통제를 복용하고 편안해 하자 더 오래 살게 될까봐 약을 감추고 주지 않았던 형수의 태도에 대해 흥분하며 “내가 반드시 나아서 저들보다 더 오래 살아 저들을 다 죽이고야 말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비중 있게 살펴보았듯, 죽음의 자리에서는 그 사람이 축적해온 인생관이나 생사관 그리고 신앙관이 모조리 시험되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온 삶 자체가 그 죽는 자세에 응집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 죽음을 수용하고 평안히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여 괴로워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적으로 신앙의 유무는 사람의 죽는 모양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죽음을 수용하고 평안히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여 괴로워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일반적으로 신앙의 유무는 사람의 죽는 모양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기독교적 본질적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죽음은 대개 평안하다.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신체적 고통과 괴로움이 똑같이 찾아오지만 고통과 괴로움에 대한 태도는 무신론자에 비해 무척 판이하다.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견딜힘을 주옵소서라는 기도에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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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9/09 [13:18]  최종편집: ⓒ 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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