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드윈이 준비한 너무도 아름다운 은반 위의 프로포즈가 연출되자 장내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다. 가슴 아팠던 과거를 잊게 만든 이 감동의 프로포즈는 그녀의 아픔을 눈 녹듯 잊게 만들었다. | |
이노우에 레나는 일본 피겨 스케이팅 선수였다. 어릴 적 천식을 앓았던 레나를 보고 그녀의 아버지는 운동을 시킬 요량으로 집 근처의 스케이트 링크에서 스케이트를 시작하게 했다.
그녀는 이에 발전해서 중3이던 90년, 알베르빌 올림픽에 페어로 출전해서 14위로 당시 일본 페어 사상 최고 순위를 달성했고 고2였던 94년에는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출전을 결정하는 전일본선수권에서 대역전극을 연출하며 여자 싱글 대표로 출전했다.
그녀에게 큰 시련이 닥친 것은 나가노 올림픽을 앞둔 1998년이었다. 시즌 초반, 40대 한창인 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뜨고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도 부진하면서, 스케이트를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하지만 그녀의 미국 유학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레슨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의상비도 충분하지 않아 자신이 재봉한 의상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혹한 시련은 자신에게 찾아온 폐암 선고였다.
그래도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항암제를 투여하면서 아르바이트와 레슨을 계속해갔다. 레슨 중에 실수로 넘어졌는데 이번에는 두개골이 깨지고 앞니가 대부분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또 심각한 심적 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난소 파열로 난소를 적출하기까지 했다.
시련이 연속되는 가운데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이 건네졌다. 미국 피겨 스케이트 선수였던 존 볼드윈이 레나에게 페어로 올림픽에 출전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존 볼드윈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레나는 그와 함께 페어 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2004년 전미선수권 페어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6년에는 전미선수권 대회에서 스로트리플악셀 연기로 역전우승을 했다.
2008년 같은 대회에서 순위는 2위였지만 볼드윈이 준비한 너무도 아름다운 은반 위의 프로포즈가 연출되자 장내는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다. 가슴 아팠던 과거를 잊게 만든 이 감동의 프로포즈는 그녀의 아픔을 눈 녹듯 잊게 만들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분명 아픔과 괴로움과 슬픔을 동반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동과 짧은 행복의 순간이 있기에 우리는 그래도 살아갈 수 있다.
몸은 우리가 규칙을 위반할 때마다 신호를 보낸다. 불쾌감을 느끼거나 근육이 경직되거나 마비가 오고 아픔을 호소할 때 몸이 우리에게 반응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몸은 나름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서 그 균형이 깨지면 신호를 보낸다.
나도 한때 건강을 잃어본 경험이 있다. 어쩜 질병은 몸이 우리에게 걸어오는 대화가 아닐까? 하지만 그 대화를 무시하면 우리 몸은 배신감에 주저앉고 말 것이다. 난 그래도 그런 아픈 순간이 있기에 우리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로알 아문센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북극의 전설적인 북서항로를 최초로 항해하여 명성을 얻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아문센은 북극해 탐험의 범위를 넓혀 북극점을 정복하려던 계획에 몰두해 있었는데 로버트 피어리가 먼저 북극점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이에 아문센은 방향을 정반대로 돌려 남극에 가기로 결심했다. 만약 자신이 사상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다면 명성은 물론이고 향후 탐험에 필요한 자금도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최초의 남극점 정복은 쉽게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영국의 남극 탐험대 역시 로버트 팰컨 스콧 대령의 지휘 아래 남극으로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문센은 경쟁자를 몹시 의식했고 스콧에게 패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남극에 봄이 찾아와 날씨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일찍 출발하는 우를 범했다. 그 결과 개들이 목숨을 잃었고 대원들은 동상이 걸려 한 달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에 아문센은 무리하게 계획을 강행하지 않고 봄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남극으로 향하는 시점이 되었을 때 그는 다시 개썰매를 이용했다. 하지만 스콧은 개 대신 전동썰매를 사용했다. 개를 동행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아문센은 그보다 현명했음을 증명했다. 스콧보다 34일 먼저 남극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경쟁이 있기에 사람들은 노력에 대한 보람도 느낀다. 그래서 부정도 생기는 것이겠지만 악한 꾀로 상대를 이겼다면 보람대신 뼈아픈 후회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돌고래는 시속 40킬로미터의 빠른 속도로 헤엄을 친다. 까치돌고래의 경우는 무려 56킬로미터로 헤엄을 친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헤엄을 치기에 돌고래의 근육 양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린 과학자들은 사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아낸 사실은 돌고래에게 정교한 피하지방층이 붙어 있어서 체온을 유지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이 지방층이 헤엄을 칠 때 유선형에 가깝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다. 지느러미에도 이 지방층이 분포해 있어서 스프링처럼 탄력을 주고 추진력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도 발견했다. 물론 에너지를 거기에 저장할 수도 있고 말이다.
난 이것을 보며 신의 정교한 설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신이라면 왜 인간에게 아픔과 괴로움과 번민을 주었을까? 분명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뭔가 깨달음을 주기 위한 안배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짧은 행복이나 감동 혹은 보람을 얻기 위해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는 신께서 너무 많은 투자를 하신 것이 된다. 인간처럼 정미하게 설계된 존재는 없다. 또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특이하고 복잡한 감정이 존재한다.
동물들에게도 경쟁이 있다고 하지만 인간처럼 추구하는 바가 복잡하지는 않다. 아픈 과거로 인해 괴로워하거나 후회로 생을 한탄하며 보내는 동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에게 후회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후회의 결과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