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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4.05.20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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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탐사' 그 생생한 '목격담 증거들'
<스페셜>舊約창세기 ‘노아대홍수’ 설원의 빅이벤트
 
소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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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혔더니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창세기 7장)   

구약성경 ‘창세기’의 노아의 홍수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세기 6:12-13) <홍수의 목적>

●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창세기 6:14-17) <방주의 규모>

●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세라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대로 암 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세기
7:6-12) <생물을 보호>

● “홍수가 땅에 사십 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方舟- 네모난 배)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 위에 떠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혔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힌지라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창세기 7:17-21) <홍수로 사멸>

●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창세기 8:1-4)
<홍수의 종식>

▲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창세기 7장)    
 


■ 구약성경 ‘창세기’ 생생한 현장중계

▲ 아라랏산 빙원속 노아방주는 무더위가 극성을 부릴 무렵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탐험가 안젤로 빨레고는 1998년 8월 30일에 지금까지 노아방주 사진 중 가장 선명한 장면을 촬영했다.   

 
▲ 지난 2003년 디지털 글로브사의 상업위성이 촬영한 노아의 방주 추정사진.    

▲ 목재 조각이 선명하게 보인다. 

 
▲ 직사각형 모형의 길다란 물체가 위성의 카메라에 잡혔다. 파란색부분을 주목하여 보라.     
구약성경 창세기의 노아대홍수 주된 핵심은 여호와께서 패역의 인간들을 멸종시키려고 결심하였으나 정직하고 신앙심이 깊은 노아와 아내 그의 세 아들 부부만은 구하기로 하고 노아에게 3층의 방주를 만들라고 한다.

방주에는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구분하여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한 쌍씩 넣어 생명을 보존하라고 한다. 노아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방주를 건설하고 동물들을 모아 홍수에 대비하여 목숨을 구하고 홍수가 끝나자 방주에서 내려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아래는 구약성경 창세기의 노아대홍수 기록을 재요약한 것이다.

▼ 노아 600세 2월 10일->방주로 들어가라 명하심(창 7:4) ▼ 2월 17일-> 홍수의 시작(창 7:10-11) ▼ 40일 후인 3월 27일 방주가 떠오르다.(창 7:17) ▼ 홍수 150일째인 7월 17일 방주가 아라랏산에 정박하다(창 8:4) ▼ 노아 601년 2월 27일에 방주에서 다 나왔다.(창 8:14-19)
 
▲ 아라랏산은 11㎞ 정도 떨어진 두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해발 고도 5,160m의 대(大)아라랏산과(右) 소(小)아라랏산은
(左)3,873m에 이른다.

세계 도처의 홍수 구전은 오히려 구약성경의 노아홍수의 기록을 토대로 다양한 유형의 홍수 설화가 태동되었음이 고고학 발견과 더불어 더욱 확실해지고 있다. 그 구체적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분명 노아 대홍수의 기록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인간의 상상으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기록임이 확고해 보인다. 이제 그 실체를 규명해 보기로 한다.

노아방주는 아라라트 산에 노아의 방주는 과연 실제로 존재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구약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방주 얘기를 다시 살펴보자. 구약성경에는 노아의 방주가 아라라트 산에 닿아 그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고 적혀 있다.(창세기 8장)

아라라트는 터키와 이란, 옛 소련 국경에 걸쳐있는 산 이름이다. 고대로부터 아라라트 산은 사람들로부터 무척 신성하게 여겨졌다. 아라라트는 ‘노아의 방주’와 ‘에덴동산’ 이 있던 성지로 하나님이 출입을 봉쇄한 금역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라라트 산은 기후 변동이 심하며 만년설로 뒤덮여 있는 해발 5,165미터의 산이다.

▲ 구약성경에는 노아의 방주가 아라라트 산에 닿아 그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고 적혀 있다.(창세기 8장)  
 
▲ 아라라트는 터키와 이란, 옛 소련 국경에 걸쳐있는 산 이름이다.    

성경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아라라트 산의 정상 부근에 호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호수는 일 년 중에 두 달 정도만 모습을 드러내고 나머지 열 달은 얼음에 묻히기 때문에 위치조차 알아내기 어려운 곳에 있었다. 이들은 노아의 방주가 아라라트 산 근처에 도달하였다는 성경의 기록을 근거로 노아의 방주는 이 호수 안에 있다고 확신하였다.
  
▲ 독일의 백만장자 슐레이만!     
■ 20세기 이전- 노아방주를 찾아서
다수 사람들 노아방주 확인. 수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백만장자 슐레이만이 호머의 전설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는 다소 무모한 추론만을 갖고 1873년에 트로이 유적을 찾은 것처럼 노아의 방주 흔적을 찾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300년 바빌로니아의 신관 베로소스는 ‘방주가 있는 곳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언제나 배에서 송진을 긁어내며 악마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삼았다’ 고 기록했다. 마르코폴로도 그의 ‘동방견문록’에 ‘아무도 오를 수 없는 산봉우리, 만년설로 뒤덮인 그곳에는 노아의 방주가 있다’고 썼다.

근세에 공식적인 자료로는 1829년 독일의 파로트 교수가 처음으로 아라라트 산꼭대기에 올랐는데 독일의 백만장자 슐레이만이  방주를 찾지는 못했지만 정상이 넓고 평평한 것으로 보아 방주가 얹힐 만하다고 하였다.

1876년에는 영국의 브라이스 경이 3,900미터 지점에
서 사람의 손으로 다듬은 것이 틀림없는 나무 조각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것이 방주의 파편이라고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노아의 방주 유물 찾기’ 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었다. 술레이만이 트로이를 발견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 1829년 독일의 파로트 교수!   
1883년 지진 피해를 조사하던 터키 관리들은 빙하에 드러난 나무로 된 검은 물체를 발견하였다. 거의가 얼음에 묻혀 있었으므로 전체 모습과 크기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안에는 높이 5미터짜리 칸막이 줄이어 있었다고 하였다.

1893년 누리 대주교는 방주를 목격하였는데 ‘적갈색의 대단히 두꺼운 용골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보고했다.

 
■ 20세기 이후- 노아방주를 찾아서

20세기에 들어 노아의 방주에 대하여 더욱 구체적인 증거들이 보고되기 시작하였다. 1916년 러시아 항공 분견대의 코스코비키 중위는 아라라트 산을 정찰하였던 결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눈 덮인 산꼭대기를 돌아서 남쪽으로 날아가니 사파이어처럼 푸른 호수가 나타났다. 나는 낮게 떠서 그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는데 거기에는 둥그스름한 지붕으로 덮인 묘하게 생긴 배 한 척이 얼음 속에 파 묻혀 있었다. 그 배는 엄청나게 컸다. 나는 그 사실을 대장에게 알렸다. 나를 따라 호수가의 배 모양을 살펴본 대장은 부대로 돌아오면서 틀림없는 노아의 방주라고 하였다.”

“대장은 로마노프 황제에게 노아의 방주를 발견하였다고 보고하자 얼마 안 있어 2개 중대를 탐험대로 보내왔다… 코스코비키 중위는 자신이 발견한 곳으로 탐험대와 함께 올라가 그 배의 크기를 재고 사진도 찍었다. 배 안은 몇 백 개나 되는 칸막이로 나뉘어 있었는데, 어떤 방은 아주 크고 천장도 높았다.”
 
▲ 1916년 러시아 항공 분견대의 코스코비키 중위     
1917년 탐험 대장은 사진과 함께 자세한 보고서를 황제에게 보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보내진 직후 러시아 제국은 볼셰비키 혁명으로 무너졌고 보고서와 사진들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 증언은 코스비키라는 사람이 익명이라는 것을 근거로 누군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평가 절하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1917년에 러시아 육군 장교들이 아라라트 산의 탐험대로 파견된 적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 비행사의 이름은 사보로키 중위와 레이진 중위였으며 대장은 콜 대령이었다. 그러므로 누가 익명의 코스코비키 중위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아라라트 산에 있었던 방주에 대한 탐험기는 가장 신빙성이 있는 자료로 재평가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시 소련 공군 마스케린 소좌의 부하가 얼어붙은 호숫가에 반쯤 파묻힌 배가 있다고 보고하였고, 이 보고를 근거로 특별 조사반이 조사하였는데 그들의 보고로는 배의 길이가 120미터도 넘는다고 했다.

1955년에는 배의 마스트로 쓰인 듯한 1.5미터의 둥근 목재를 프랑스인 페르난도 나바라가 가지고 돌아왔는데 탄소연대측정에 의하면 기원전 3천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노아의 방주의 유물이라고 발표되었다.

1959년 터키에 머물렀던 미 공군 428 전술 비행중대 슈잉하머 소위도 아라라트 산의 방주에 대하여 러시아 군인들과 거의 같은 내용을 증언하였다

▲ 프랑스인 페르난도 나바라      
“나는 F-100 전폭기를 몰고 아라라트 산으로 갔다… 아라라트 산을 돌자 낙타등 같이 생긴 산등성이 밑에 배 같은 모양이 드러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너비는 12미터쯤이고 길이는 얼음 위로 드러난 것만 30미터가 넘었다. 우리는 사진을 촬영할 수 없었으나 나중에 고공 정찰기인 U-2기가 사진을 촬영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가 본 물체는 틀림없이 네모난 배 모양이었다.”

1960년 터키 공군의 커어티스 소령은 아라라트 산을 항공 촬영하라는 지시를 받고 촬영해 온 항공사진을 살펴보다가 아라라트 산허리에 있는 달걀 모양의 물체를 발견했다. 여러 차례 거듭된 화산폭발로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 속에 묻혀있는 기이한 물체였다.

소령의 사진을 조사한 전문가는 “노아의 방주 이외의 다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사진 측량에 있어서 세계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아더 브런덴부르거 박사에게 보내졌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나의 명예를 걸고 단언한다. 아라라트 산의 물체는 틀림없이 배이다.”

1969년에는 미국의 고고학 탐험대가 대규모 조사단을 조직해 동정에 올랐다. 면밀한 조사 결과 북서부의 해발 4,900m 지점에서 깊이 6m의 빙하 밑바닥에 배 비슷한 물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커어티스 소령이 발견한 곳과 해발에서 차이가 나지만 크기(약 150m)는 비슷했다. 이들이 회수한 나무 조각을 미국으로 가지고 돌아가 검사한 결과 프랑스인 나바라와 마찬가지로 4,000-5,000년 전 것임이 판명되었다.

1974년 ERTS(지구자원탐사기술위성)가 아라라트 산에서 어렴풋한 물체를 찍었는데 그 모습은 방주와 꼭 같다고 주장했다.

▲  아라랏산 노아방주 대탐사는 세계 각국에서 멈춤이 없이 지속되어 오고 있다.   

가장 최근의 사건은 2009년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노아의 방주가 터키 아라라트산에서 발견됐다고 국제노아의 방주 사역회(NAMI) 탐사대가 2010년 4월 26일 밝혔다.

NAMI 소속으로 홍콩에 소재한 기독교 영화제작사를 위시 중국인과 터키인 과학자들의 15명으로 구성된 탐사대가 7년간 터키 동부 아라랏산을 탐사한 끝에 2009년 10월 해발 4,000m 지점에서 목재 구조물을 발견한 것이다.

▲ NAMI 소속으로 홍콩에 소재한 기독교 영화제작사를 위시 중국인과 터키인 과학자들의 15명으로 구성된 탐사대

▲ 국제노아의 방주 사역회(NAMI) 탐사대는 인근 지역 3,500m 이상의 높이에서 인간이 거주했던 시설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들어 구조물이 인간의 거주지역이 아닌 실제 노아의 방주가 틀림 없다고 단언한다.    
 
 
▲ NAMI  탐사대의 목재 샘플은 노아의 방주사건이 일어난 것과 비슷한 시기인 4,800년 전에 근접했다.     
여러 칸으로 구성된 이 목재 구조물은 눈과 화산재 아래에 묻혀 있었는데, 목재 기둥으로 받쳐진 점에 미뤄볼 때 방주에 태웠던 동물 우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홍콩 출신 탐사대원 융윙충은 덧붙였다. 탐사대는 인근 지역 3,500m 이상의 높이에서 인간이 거주했던 시설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들어 구조물이 인간의 거주지역이 아닌 실제 노아의 방주가 틀림 없다고 단언한다.

이들은 그 목재 표본을 채취해 탄소 연대를 측정했다. 그 결과, 목재는 노아의 방주사건이 일어난 것과 비슷한 시기인 4,800년 전에 근접했다. 성경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는 길이 137m, 폭 23m, 높이 14m로 테니스장 36개를 합친 것과 같은 초대형 배이다.

 
■ 대홍수 관련 구전 ‘세계 도처에’

고고학자들은 대홍수를 증명할 만한 침전층을 발굴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우선 그들은 수메르의 점토판에 의하면 홍수가 나기 전까지 에리두, 바브티빌라, 라라크, 싯파르, 슈르팍크 등 5개의 도시가 있었다는데 주목하였다.

홍수에 관계되는 이야기가 모두 허구라면 점토판에서 말하는 도시 또한 허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고고학자들의 믿음은 옳았다. 홍수 이전에 건설되었다는 5개의 도시 중에 3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 노아방주가 위치한 아라랏산의 위도와 경도    

▲ 이 글의  필자 또한 노아방주 미스터리의 저자이다.   

발견된 도시의 이름은 에리두, 싯파르, 슈루팍크였다. 고대도시의 발견에 힘을 얻은 학자들은 대홍수의 흔적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섰다. 1929년 레너드 울리 경은 우르 지방에서 점토층의 두께가 3.7미터나 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 점토층은 기원전 약 3,500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기원전 2800년으로 추정되는 점토층도 발견되었는데 “이렇게 두터운 진흙이 갑자기 쌓였다는 것은 특이한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다. 이들 중 오래된 것을 나는 대홍수라고 생각한다.” 라고 울리 경은 단정하였다.

그밖에 슈루팍크에서도 기원전 2900년경으로 추정되는 침전층이 발견되었다. 1975년 에밀리아니는 멕시코 만의 심해부를 조사한 결과 고대에 해면 수위가 수십 미터의 급격한 상승을 보인 적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수많은 목격자들이 증언한 배 형태의 물체가 아라라트 산에 있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그렇다면 아라라트 산에 있는 물체가 정말 노아의 방주가 틀림없는 것일까?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노아의 방주는 길이 135미터 폭 22.5미터 높이 13.5미터로 배수량이 4만3천 톤이나 되는 엄청난 크기이다. 앞서 언급된바, 아라라트 산의 물체를 마스케린 소좌가 조사한 바로는 길이가 120미터나 되었다는 것을 볼 때 성경의 기록과 합치한다.

▲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노아의 방주는 길이 135미터 폭 22.5미터 높이 13.5미터로 배수량이 4만3천 톤이나 되는 엄청난 크기이다.   

세계 각지에서 내려오고 있는 모든 신화 중에서 대홍수의 이야기는 가장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대홍수가 일어나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집트의 경전,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고서, 태평양의 여러 민족, 중국,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설 속에도 대홍수의 이야기가 있다. 특히 미국의 원주민의 전설 속에도 대홍수의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인디언들은 눈이 녹은 것이 대홍수의 원인이 되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전설의 패턴도 거의 일정하다.

이 사실은 사람이 사는 광범위한 지대에 걸쳐 홍수가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유라시아 대륙 오스트레일리아대륙 아메리카 대륙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홍수 기록의 설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원본 기사 보기:jb-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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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7/30 [22:11]  최종편집: ⓒ 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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