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근무해야 하는 띤간준 병원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내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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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일 아침 5시, 긴장감과 불안감으로 잠에서 일찍 깼다. 7시에 병원에 가려고 집에서 들뜬 발걸음으로 나왔다. 나의 인턴 생활의 첫날이었다.
내가 근무해야 하는 띤간준 병원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내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지난 3년 동안 학생 신분으로 자주 가 본 적은 있지만, 그날은 인턴으로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2층에 있는 일반 외과의 인턴 방에 도시락과 이불, 세면도구가 들어 있는 가방을 가져다 두었다.
인턴들은 일 년 동안 여러 과를 차례로 돌아가며 경험해야 하는데, 나는 일반 외과부터 시작했다. 나는 D-그룹이었고 나와 함께 근무할 친구는 노노, 소피야, 수다와 아웅이었다. 우리 그룹은 첫날 24시간 근무라 너무 긴장되었다.
잠시 후 선배인 팀장 선생님을 찾으러 병동 카운터에 갔는데 의사, 간호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팀장 선생님의 방에 가서 모두 왔다고 알렸다. 팀장 선생님이 새로 온 인턴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외과에는 인턴이 우리 그룹 외에 세 그룹이 더 있었다. 일은 그룹별로 분류해서 해야 했다. 우리 그룹은 주로 환자에게 주사를 놓고, 문제가 생기면 가서 확인한 후 선배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거기다 바이탈 모니터도 하고, 새로 입원한 환자들도 봐야 했다. 오후 4시부터는 다른 인턴 그룹의 업무를 우리가 이어서 하게 되어 있었다.
오전 9시에 병동 회진이 시작되자 우리도 따라가서 해야 할 일들을 메모했다. 며칠 전 선배 인턴들로부터 해야 할 일을 미리 인계받았지만, 실제로 일할 때는 익숙하지 않아서 일이 잘 안되었다.
선생님들이 환자의 상태에 대해, 환자 사례(bed side case discussion)를 논의하는 걸 보면서 너무 부럽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회진 후 인턴 중 한 명이 환자들에게 주사를 놓기 위해 준비했다. 환자가 총 80명 정도였는데, 처음 주사를 놓는 거라 손에 익숙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저녁까지 끝낼 수 없었다.
3층의 외과 병동에도 환자가 있어서 인턴 한 명이 그쪽으로 투입되고, 남은 세 명이 선배 선생님을 도와 새 환자들을 돌보았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들이 복잡하고 낯선 일이라서 너무 어려웠다. 하루 종일 바빠서 한시도 앉아 있을 수 없었고 점심도 못 먹었다. 4시 후에는 팀장 아래 선배 세 명과 인턴 다섯 명만 남았다.
오후 4시 전에 수술이 있으면 수술실에 가는 인턴 그룹이 따로 있지만, 4시 후에 수술이 있으면 우리가 가야 해 더 바빠졌다.
6시쯤 휴게실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선배 선생님이 나를 보고 '저녁 먹으려고요?'라고 물었다. 내가 '점심 먹으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선배님이 웃으면서 '점심도 아직 못 먹었어? 처음이라서 그래. 나중에 익숙해질 거야.
아무리 바빠도 밥은 챙겨 먹어야지. 병원의 일은 끝이 없어. 너무 급한 일이 아니라면 잠시 그냥 두고 밥을 먹어. 밥을 먹어야 일을 잘할 수 있겠지'라고 말했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앞으로 3개월이나 더 이곳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당장 집에 가서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는 상황이라 눈물을 참고 밥을 빨리 먹었다.
밤에는 부상자들이 많이 와서 상처를 봉합하는데 우리가 도와줘야 했다. 너무 피곤했지만, 봉합하는 것을 배울 수 있어서 뿌듯했다. 긴급 수술이 많아서 친구 한 명은 수술실로 갔고,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할 환자가 있어서 또 다른 인턴 한 명은 그 병원으로 따라갔다.
마침내 병동에 인턴 세 명만 남았다. 새벽 2시까지 새 환자들이 계속 와서 앉을 시간도 없이 일했다.
새벽 3시쯤에는 새 환자도 없고 친구들도 자리로 돌아와, 카운터에 앉아 환자의 보호자가 준 빵과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때 “선생님, 빨리 와 보세요. 남편이 내가 부르는데도 대답이 없어요”라고 한 아줌마가 뛰어와서 말했다.
환자의 호흡은 정상이 아니고, 혈압은 떨어지고, 맥박은 약해 잴 수 없었다. 환자의 상태를 선배님에게 알렸는데, 선배님이 환자를 진찰한 후 CPR를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환자를 살릴 수 없었다. 내 눈앞에서 사람의 죽음을 처음 본 날이었다.
환자 가족들의 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울고 싶어졌다. 잠시 후 선배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특별한 일이 없었던 것처럼 죽은 사람에 관한 필요한 서류들을 침착하게 작성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보고서를 계속 쓰고 있었지만, 죽은 사람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다.
오전 5시부터 환자들에게 주사를 놓고 혈압을 쟀다. 8시에 다음 근무팀에게 중요한 케이스를 인계한 후 인턴 방으로 갔다. 내 친구는 아직도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팀장 선생님이 아침을 사주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어제부터 계속해 일하기에 바빠 몸이 피곤한 줄 몰랐는데, 근무 시간을 마치고 보니 내 몸의 모든 부분에서 통증을 느꼈다.
9시에 교수님 방에 가서 보고서를 내고 교수님 앞에 서서 중요한 케이스의 컨디션에 관한 질문에 답해야 했는데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아 혼났다. 그 방에 있기에 너무 답답하고 다리가 아파서 당장 도망가고 싶었다. 10시에 보고서 읽기가 끝나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내 친구가 너무 힘들어 더 이상 할 수 없다며 울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격려한 후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왔다.
퇴근길에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 병원 밖으로 잘 걸어갈 수조차 없었다. 병원에서 집까지 택시로 15분 정도 걸리는데, 그 사이에 택시에서 깜빡 졸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많은 환자들이 입원하는 꿈을 꿨다.
간호사 선생님과 병원 직원들의 목소리, 환자 들것, 트롤리 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려왔다. 지옥 같은 병동에서의 인턴 첫날의 업무가 꿈속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 프로필
Hnin Wutt Yi(은지)
양곤 거주
양곤 의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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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