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선 울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은 죽음을 눈앞에 두면 의연해지는 모양이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보면 향년을 따지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만 고인의 향년은 칠십육 세다.
우리나라 여자의 기대 수명(86.6세)에 비하면 10년이나 일찍 세상을 떠난 셈이다. 사촌 누나는 몇 년간 암 투병하며 고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어 심신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은 몸이 너무 아프면 차라리 죽기를 바라고 죽음에 초연해질 수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먹을수록 가까운 곳에서 부음이 부쩍 늘고 있다. 작년 말에는 작은고모가 별세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생을 마감했다. 80대 중반까지 살아 기대 수명은 채웠으니 크게 아쉬울 것 없을지 모르나, 작은딸을 먼저 떠나보낸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었다.
작은딸은 굶어 죽었다고 하는데,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던 듯하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을 먼저 보내는 아픔보다 큰 슬픔은 없을 것이다.
팔십 대 중반의 셋째 고모도 이삼 년 전에 장남을 먼저 떠나보냈다. 장남은 계단에서 뒤로 넘어져 뇌진탕으로 즉사하고 말았다. 자식이 비명횡사했으니 셋째 고모는 크나큰 아픔을 안고 슬픈 삶을 사는 것이다.
올해 초에는 절친한 친구의 장모가 팔십삼 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장모는 암으로 운명했는데, 그로 인한 고통에서 해방되고 우리나라 남녀 평균 기대 수명(83.6세)까진 살았으니 미련이 남지 않을 수도 있다.
이삼 년 전부터 어머니가 “나는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라고 자주 말한다. 사람이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면 미련을 버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생모는 내가 열네 살 때 삼십구 세로 요절했다. 체기로 인한 급병으로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기에 죽음은 나이에 상관없이 언제든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겪었다.
삼 년 전에 아파트 리모델링 건으로 예전의 교회 후배와 그의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일도 열심히 하고 보기에도 멀쩡했는데 말기암 환자로 삼 개월 남았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비록 일 년이 넘도록 생존했으나 오십 대 중반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사고나 자살로 인한 사망은 별개로 치고, 병사로 칠십 세는커녕 육십 세도 못 넘기는 것에 비하면 팔십 세 넘어서 사망하는 것은 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살다 보면 경조사가 따르기 마련이다. 젊었을 때는 가까운 이들의 경사스러운 소식이 많았다. 결혼, 돌잔치, 화연 등. 반면 나이가 들수록 안 좋은 소식이 늘었다. 암, 사망 등. 큰형수가 몇 해 전에 위암에 걸렸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되어 약물 치료와 식이 요법을 통해 이삼 년 만에 완치되었다.
내가 속한 문학회 회장도 오래전에 위암에 걸렸는데 쉽사리 완치되지 않아 작년까지만 해도 방사선 치료를 받았었다. 동창의 부인도 재작년에 위암에 걸려 수술을 통해 위를 일부 절제해 나았다. 하지만 일 년 만에 재발해 재수술을 받았다.
불행히도 위 입구에 암이 걸려 완치가 불가능하고 전이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위 전부를 들어내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모두 다 위암인데, 우리나라 위암 발생률은 세계 1위이다.
한편 남녀 평균 기대 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9%나 되고, 암은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로 전체 사망자 수의 26%나 차지한다. 통계처럼 암으로 인한 나쁜 소식이 늘었다.
사촌 누나가 걸린 암은 췌장암인데, 불행하게도 췌장암은 초기엔 증상이 거의 없어서 조기 진단이 어렵고 복통, 체중 감소 등으로 알게 되었을 때는 상당히 진행된 후라서 5년 생존율이 5% 이하로 예후가 매우 나쁜 암이다.
그러니 심신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작년에 사촌 여동생 장남의 결혼식장에서 큰형이 사촌 누나를 봤을 때 비쩍 말라 보였다고 한다. 큰형이 왜 그렇게 말랐느냐고 묻자 사촌 누나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고 한다. 이미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아 체념과 수용이 교차했을 것이다.
나는 사정상 그 결혼식장에 가지 못했지만 그때에 사촌 누나를 보지 못한 게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결국 4년 전 조카의 결혼식 때에 본 게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사촌 누나는 친척의 경조사에 항상 자리했다.
▲ 사람은 죽음을 눈앞에 두면 의연해지는 모양이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pixab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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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친척의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는 어김없이 볼 수 있었다. 희끗하고 곱슬한 단발머리에 그윽이 미소 짓는 모습은 정겹고 기품 있었다. 그런 누나가 작년 말 작은고모의 장례식장에 자리하지 않은 걸 의아해했는데 그렇게 아파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십 년 전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셋째 고모의 장남이 떠나며 한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때나 보는가 봐요.” 그 후로 8년 뒤에 그의 장례식장에서 정말 ‘이런 때나 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가 죽은 뒤에나.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젊었을 때부터 중년까지는 사촌끼리 일부러 만나지는 않았는데 늘어나는 경조사로 인해 ‘이런 때’에라도 곧잘 만나게 된 것 같다. 나는 경조사에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사촌 누나의 죽음으로 인해 자주 가서 사촌들을 한 번이라도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2남 3녀 중 셋째인 차남이었는데, 그 형제자매 중에 막내인 셋째 고모만 남았다. 몇 살 차이 안 나지만 조카의 장례식장에서 셋째 고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셋째 고모와 사촌 누나는 평생 친근하게 지냈다. 장남을 떠나보낸 것만큼이나 아팠을 것이다.
굶어 죽은 작은고모의 작은딸과 사고사 한 셋째 고모의 장남은 별개로 치고, 사촌 중에서 병사하기는 사촌 누나가 처음이다. 이제 우리 차례인가 하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든다.
몇 년 전에 대장에서 용종을 떼어 내고 작년엔 선종을 떼어 낸 큰형이 조금 걱정된다. 하지만 그토록 사전에 예방하려고 하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나도 나이가 먹어 가다 보니 몇 년 전부터 겪어 보지 못했던 병들이 생기고 있다.
건강에 자신 있었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속담이 들어맞는다. 꼭 압도적인 사망 원인인 암에 걸려 죽지 않는다 해도 그 다음 순위인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 등 다른 병으로도 죽을 수 있고 또 사고로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사촌 누나의 장례식장에서 울음을 찾아볼 수 없었던 건 독실한 신자로서 소천했기 때문이다. 나도 죽을병에 걸리거나 죽음을 눈앞에 둔다 해도 사촌 누나처럼 미소를 띠고 싶다.
◑ 김명석 프로필
한국수필 신인상(2023년)
문학동인 글마루‧한국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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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