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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4.10.10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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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曜 隨筆) 이미영 ‘산나물 같은 사람’
 
이미영 /前 MBC 아나운서
 

 

▲ 이미영 수필가  < 前 MBC 아나운서>

 

심산 속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연의 품에서 그대로 펴질 대로 펴지고 자랄 대로 자란 싱싱하고 향기로운 이 산나물 같은 맛이 사람에게도 있는 법이건만, 좀체 순수한 산나물 같은 사람을 만나기란 요새 세상엔 힘 드는 노릇 같다.

 

산나물 같은 사람 어디 있을까? 모두가 억세고, 꾸부러지고, 벌레가 먹고, 어떤 자는 가시까지 돋쳐 있다. 어디 산나물 같은 사람은 없을까?’

 

노천명 시인의 산나물이란 수필의 일부이다. ‘요새 세상이란 말에서 웃음이 나온다. 요새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원래 다 그런 모양이다. 요새 세상은 늘 예전 세상보다 문제가 많고 살기가 나쁜 세상인가 보다.

 

그때의 요새 세상에는 억세고 구부러지고 벌레 먹고 가시 돋친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요새 세상에 비하면 애교스럽다. 요새 세상은 흉포하고 잔인하고 반사회적인 인격 장애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가 넘쳐 심히 공포스러운 세상이니 말이다.

 

요새 세상이란 말은 젊은 사람의 용어가 아니다. 시인도 말했듯 풍우난설(風雨亂雪)의 세월을 겪어본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말이다. 노인들은 습관적으로 되뇐다. “말세야, 말세.” 젊어선 멀쩡하던 세상이 늙으면 말세로 바뀌니 그도 신기한 노릇이다.

 

노인들이 세상이 곧 망할 것처럼 생각하는 이유가 재밌다. 자기가 삶을 다 누리고 세상을 떠날 때 크게 아쉽지 않게 떠나고 싶은 심리 때문이란다. 하지만 세상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이탈하지 않고 길게 오래, 돌고 또 돌 것이다. 젊은이들은 노인의 악담 같은 예언에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갈 것이고, 또 자기들도 늙어서 말세인 세상을 한탄하게 될 게 분명하다.

 

요새 세상에 만나기 힘든 산나물 같은 사람이란 표현이 신선하다. 그 시절에도 찾기 어려운 산나물 같은 사람이라면 지금은 더 희귀한 천연기념물 같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런 순수한 사람이 요새 세상을 살아갈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

 

정 칭찬할 게 없을 때 할 수 있는 칭찬이 착하다는 말이라던가. 언제부턴가 착하다는 칭찬은 사람을 얕잡아보는 말로 들린다. 착하고 순수해서만은 살 수 없는 세상이 요새 세상이다.

 

어린 손자를 둔 선배가 딸의 교육방식에 뜨악했다고 한다. 놀이터에서 아이가 귀엽다고 누가 과자를 건넸는데 아이는 감사하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받지도 않더란다.

 

그런 손자의 반응이 민망했던 선배는 집에 돌아와 왜 예절교육을 안 시키느냐고 딸에게 한소리 했더니, 요새 세상에서는 아이들에게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절대 받지 않도록 교육시켜야 한다고 반박하더란다. 대꾸할 말을 잃었다는 선배의 심경이 이해가 간다.

 

결국 험악한 사회현실을 탓할 수밖에. 순수한 정()이란 건 이제 함부로 주지도 받지도 말아야 하는 거추장스러운 미덕이 돼버리는 건가.

 

▲ 넉넉한 마음 씀씀이와 고마움을 되갚을 줄 아는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산나물 같은 사람들이 귀하고, 그래서 더 소중한 요새 세상이다.      

 

산나물 하면 취나물, 고사리, 곤드레, 명이나물, 방풍나물, 도라지 정도 알고 있다. 건나물 세트를 선물로 받아보면 듣도 보도 못한 나물들도 참 많다. 눈개승마, 쑥부쟁이, 부지깽이... 하긴 우리나라 산야에서 나는 식물치고 약초 아닌 게 없고 먹지 못하는 게 없다지 않나. 가끔 산나물 비빔밥이나 산채정식을 먹으면 입맛이 개운해지고 마음까지 정갈해진다.

 

각종 인스턴트 음식과 기름지고 달고 짠 음식에 중독된 혀의 미뢰가 치료되는 것 같다. 기분 좋은 포만감에 정신까지 건강하게 순화되는 느낌이다. 정말 착한 산나물이다. 그런 착한 산나물 같은 사람을 눈 씻고 잘 찾아보면 어딘가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인명구조를 위해 생계수단이던 화물차를 기꺼이 포기하는 기사와 그의 의로운 행동에 대한 보답으로 선뜻 비싼 화물차를 내어주는 기업. 교통카드가 인식되지 않아 난감해하는 승객을 그냥 타라고 해주는 버스기사와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버스회사로 음료수 상자를 보내 몇 십 곱절로 보답하는 승객.

 

넉넉한 마음 씀씀이와 고마움을 되갚을 줄 아는 착한 마음씨를 가진 이들 모두가 순수한 산나물 같은 사람들이 아니겠나. 산나물 같은 사람들이 귀하고, 그래서 더 소중한 요새 세상이다.

 

(穠坡) 이미영 프로필

) MBC 아나운서

계간 미래시학편집위원

수필집 바람 비린내

nongpalee@naver.com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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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8/11 [23:33]  최종편집: ⓒ 해피! 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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